목록파리 (66)
Antic Nomad
Rue Vavin 그에게 전화가 온 것은 이미 아홉시가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거실 소파에서 책을 보다가 문득 선잠이 들었는지 진짜 울리는 전화소리조차 꿈속에서 울리는 듯 몽롱하기만 했다. Oui? 반가운 그의 목소리가 가라앉은 밤의 공기를 부드럽게 헤쳐놓았다. 살짝 무거운 머리를 흔들고 집을 나서니 농축된 여름밤의 향기가 거리에 가득해 아찔하기까지 하다. 카페 안에 자리한 마지막 손님들은 여전히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시끌벅적하다. 잘 지냈어? 자동차 열쇠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십삼년만이었다. 오랜 여행을 끝내고 온 그의 얼굴을 보며 씨익 웃어보였다. OUI.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가워졌다. 그날은 늑장을 부리다 점심까지 먹고나서 집을 나섰는데, 퐁피두 센터 가는 길에 시테섬을 지나다가 바라본 모습이다. 금방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더니 건물들만 반짝 반짝 최선을 다해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마치 선택된 자라도 된 양... 으쓱거리듯이 ... 내 쪽엔 비치지 않는 햇살이 왠지 탈락된 인간같아 서운하다. 낮과 밤이 존재하는 르네 마그리뜨의 그림처럼 명암이 갈린 풍경을 보고 있자니 왠지 지금 내가 여기 서 있는 것조차 비현실적인 일같이 느껴진다. 잠시 다른 공간에 끼어있는 듯한 느낌... 다시 구름이 햇살을 가로막고 세상은 잠시 어둠... 해를 등지고 서서 다리를 건넜다.
비 오는 날의 로망. 짧은 바지에 방수되는 신발을 신고... 새로 산 우산 펴들고 갓 내린 커피향이 짙게 내려앉은 카페에 앉아 주변 소음속으로 점점 빠져드는 것.
Angelina’s Hot Chocolate 앙젤리나 핫 초콜릿 1903년 오픈한 앙젤리나 카페는 진한 쇼콜라쇼에 마스카포네 한 숟가락과 휘핑크림을 얹어 데미타스 컵에 담아 서브한다. 앙젤리나는 녹인 초콜릿바로 뜨거운 쇼콜라쇼를 만드는 걸로도 유명하다. 뜨거운 물과 초콜릿을 혼합하여 만드는 과정은 준비하기도 굉장히 쉽다. 가능하면 카페에서처럼 17세기 스타일의 초콜릿 주전자와 멋스러운 데미타스 컵(일반 커피잔의 반정도 크기의 컵으로 에스프레소와 아랍커피를 내 놓을 때 주로 쓰인다) 에 쇼콜라쇼를 듬뿍 따라 마시며 즐겨보자. 다진 세미 스윗 초콜렛이나 비터 스윗 초콜렛 6온스 실내 온도에 맞춘 물 1 / 4 컵 뜨거운 물 3 큰술 따뜻한 우유 3 컵 약간의 설탕 취향에 따라 휘핑크림 다진 초콜릿과 실내 온..
봄이면 겨우내 얼어터진 땅을 돋구고, 계분을 뿌려 기운을 주고, 씨앗을 뿌리고, 귀찮은 분갈이를 하는 엄마의 성화에참 많이도 화분을 들었다놨다, 흙을 팠다 골랐다... 그때는 이 세상 귀찮은 일 중의 하나였는데이제는 봄이 오니 나 혼자서도무언가를 일구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볕을 쐬이고이제나 저제나 새싹이 나올까매일 퇴근하면 쪼그리고 앉아 새싹 나올 기미조차 없는 작은 흙봉지 안을 들여다본다. 작은 새순 하나 보기위해... 얼마를 기다려야 할까.
쉬농소 성의 주방...성안을 찾아오는 수많은 손님들과 주인님들을 위해 없는게 없는... 주방. 커다란 벽 한쪽에 매달린 구리냄비는 지금도 가끔 손질을 하는지 윤이 반질반질한게 금방이라도 내려서 불에 올리고 싶을 정도다. 화덕도 있고, 벽돌로 만든 개수대도 있고, 나름 과학적인 정수 시스템도 있다. 큰 거북이 같은 무쇠난로위에 얼마나 많은 냄비가 올려져서 바글바글 끓으며 냄새를 풍겼을까... 갓 잡아온 사슴, 토끼등을 푸줏간 실에서 다듬어 오고... 그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찜을 할지 구이를 할지 고민을 했겠지... 강 위를 미끄러져 온 배 위에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도르래에 매달린 통에 넣어 위로 올려주고... 한쪽 개수대에선 차가운 물을 받아 씻곤 했겠지. 요리를 하기 시작하니... 점점 냄비가 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