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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c Nomad
Rue Vavin 그에게 전화가 온 것은 이미 아홉시가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거실 소파에서 책을 보다가 문득 선잠이 들었는지 진짜 울리는 전화소리조차 꿈속에서 울리는 듯 몽롱하기만 했다. Oui? 반가운 그의 목소리가 가라앉은 밤의 공기를 부드럽게 헤쳐놓았다. 살짝 무거운 머리를 흔들고 집을 나서니 농축된 여름밤의 향기가 거리에 가득해 아찔하기까지 하다. 카페 안에 자리한 마지막 손님들은 여전히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시끌벅적하다. 잘 지냈어? 자동차 열쇠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십삼년만이었다. 오랜 여행을 끝내고 온 그의 얼굴을 보며 씨익 웃어보였다. OUI.
봄이면 겨우내 얼어터진 땅을 돋구고, 계분을 뿌려 기운을 주고, 씨앗을 뿌리고, 귀찮은 분갈이를 하는 엄마의 성화에참 많이도 화분을 들었다놨다, 흙을 팠다 골랐다... 그때는 이 세상 귀찮은 일 중의 하나였는데이제는 봄이 오니 나 혼자서도무언가를 일구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볕을 쐬이고이제나 저제나 새싹이 나올까매일 퇴근하면 쪼그리고 앉아 새싹 나올 기미조차 없는 작은 흙봉지 안을 들여다본다. 작은 새순 하나 보기위해... 얼마를 기다려야 할까.
쉬농소 성의 주방...성안을 찾아오는 수많은 손님들과 주인님들을 위해 없는게 없는... 주방. 커다란 벽 한쪽에 매달린 구리냄비는 지금도 가끔 손질을 하는지 윤이 반질반질한게 금방이라도 내려서 불에 올리고 싶을 정도다. 화덕도 있고, 벽돌로 만든 개수대도 있고, 나름 과학적인 정수 시스템도 있다. 큰 거북이 같은 무쇠난로위에 얼마나 많은 냄비가 올려져서 바글바글 끓으며 냄새를 풍겼을까... 갓 잡아온 사슴, 토끼등을 푸줏간 실에서 다듬어 오고... 그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찜을 할지 구이를 할지 고민을 했겠지... 강 위를 미끄러져 온 배 위에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도르래에 매달린 통에 넣어 위로 올려주고... 한쪽 개수대에선 차가운 물을 받아 씻곤 했겠지. 요리를 하기 시작하니... 점점 냄비가 탐이..
파리에 눈이 내렸던 그날. 아침부터 의무감에 카메라를 메고 다니다 단발머리부터 어그 부츠 속까지 다 젖었던 날...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쓸데없는 의무감에 하루종일 싸돌아다니다가 집에 왔더니.. 친구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오늘 하루, 행복했니? 아주 짧은 그녀의 문자였는데, 추운데 있다 들어온 탓에 카메라 렌즈에도 내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눈 때문에.. 행복했어야 했는데,,, 마냥 즐겁게 지내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에 아쉬움 많았던 하루. 그래도, 사진 몇장 건졌으니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는 직업병 멘트따위 하고 싶지는 않았던 그 날. 오늘 하루, 행복하십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세일하는 맥주 네캔. 잊지 않고 봉지에 담아 온 그날... ^^ 자기 전엔 행복했습니다. ^^
" ..... 나는 이미 정해져 있는 두 개의 입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을 나 나름대로 판단하여 나만의 입장을 가지려고 노력해왔다. 진정한 지식인은 기존의 입장으로 환원되지 않는 '분류가 불가능한' 자기만의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지식인은 현실 세력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 사고를 하기 때문에 어느 진영에 분명히 속한 사람들이 힘을 쓰는 현실 세계에서 대우받기가 힘들다. 그래도 나는 분류가 불가능한 독자적 지식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 "" 프로방스라는... 발음의 떨림이 미스트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책이라 냉큼 집어왔는데, 왠걸.. 생각보다 쉽게 읽히지 않는다. 아마도 쉽게 슥슥 읽어내려가는 단순한 기행기가 아닌, 작가의 농밀한 지식과 사상,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