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BlueBarn:::(worldwide)/France + 프랑스 (78)
Antic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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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첫 인상은 온통 비였고, 쟂빛하늘이었다. 출장으로 잠깐 갔던 3박 4일동안 거의 매일 비가 왔고, 온통 회색빛 하늘에 음침하기 그지 없었다. 낭만이라곤 없이 카메라 비 맞을까 품 안에 품고 습기와 물에 젖어 한국무용에나 어울릴 쪽머리를 해서 돌아다녔다. 연예인 3명을 따라다니며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지만 오후에 호텔에서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 잔은 꿀맛이었다. 낭만따위 없는 축축한 출장 후, 또 파리에 올 일이 있을까 했는데 이년 후 언니 시조카의 결혼식 참석차 다시 갔을 때는 내가 알던 파리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렇게나 활기 넘치는 도시였다니!! 여름의 파리는 더웠지만 싱그러웠고, 온통 초록 세상과 연노랑 크림색과 그레이(건물과 지붕)의 세상이었다. 골목 골목, 발 걸음 내딛는 모든 보도블럭마..
그 때, 가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안 갔으면 좋겠다고 하는 너의 말을 들을 걸 그랬어. 금방 또 만나. 하고 헤어지면 되잖아 라고 웃으며 내가 말헀고, 헤어짐에 아파하는 네 모습 따위 거짓이라고 애써 냉정해지려고만 했지. 잡지는 않았지만, 보내기 싫어하는 너의 조급해진 손길을 뿌리치진 말았어야 했을까. 그 때, 너의 마음은 나를 위한 위로였을까 너를 위한 가면이었을까. 기운차게 지하철 문을 밀고 나가는 그 찰나... 우리가 인사도 없이 헤어진 그 때. 그 지하철 역.
노틀담 사원 대각선 방면 횡단보도를 건너 무작정 걷기 시작한게 오전 열한시 즈음. 한참 이골목 저골목 다니다가 두 건물 사이 작은 철제 문이 나 있는 곳을 지나갔다. 그 곳은 따로 가려하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가버릴 만큼 돋보이는 것도 랜드마크가 될 만한 모양새도 아닌 곳이었다. 그저 건물 사이 후미진 뒷골목이거나 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무심코 내 앞의 관광객들을 따라 우연히 발을 들이게 된 이 골목길은 뜻밖의 보석같은 가게가 많은 곳이었다. 비스듬하게 주저앉고 있는 듯한 카페하며, 기념품가게도 하나 있고, 지류와 편지지, 왁스같은 것을 파는 잡화점도 하나 있었다. 골목 중간 즈음 바닥이 울퉁 불퉁 해 자세히 보니, 가운데가 볼록하고 양 옆으로 반들반들하게 닳은 네모난 돌 타일들이 ..
Rue Vavin 그에게 전화가 온 것은 이미 아홉시가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거실 소파에서 책을 보다가 문득 선잠이 들었는지 진짜 울리는 전화소리조차 꿈속에서 울리는 듯 몽롱하기만 했다. Oui? 반가운 그의 목소리가 가라앉은 밤의 공기를 부드럽게 헤쳐놓았다. 살짝 무거운 머리를 흔들고 집을 나서니 농축된 여름밤의 향기가 거리에 가득해 아찔하기까지 하다. 카페 안에 자리한 마지막 손님들은 여전히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시끌벅적하다. 잘 지냈어? 자동차 열쇠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십삼년만이었다. 오랜 여행을 끝내고 온 그의 얼굴을 보며 씨익 웃어보였다. OUI.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가워졌다. 그날은 늑장을 부리다 점심까지 먹고나서 집을 나섰는데, 퐁피두 센터 가는 길에 시테섬을 지나다가 바라본 모습이다. 금방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더니 건물들만 반짝 반짝 최선을 다해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마치 선택된 자라도 된 양... 으쓱거리듯이 ... 내 쪽엔 비치지 않는 햇살이 왠지 탈락된 인간같아 서운하다. 낮과 밤이 존재하는 르네 마그리뜨의 그림처럼 명암이 갈린 풍경을 보고 있자니 왠지 지금 내가 여기 서 있는 것조차 비현실적인 일같이 느껴진다. 잠시 다른 공간에 끼어있는 듯한 느낌... 다시 구름이 햇살을 가로막고 세상은 잠시 어둠... 해를 등지고 서서 다리를 건넜다.
쉬농소 성의 주방...성안을 찾아오는 수많은 손님들과 주인님들을 위해 없는게 없는... 주방. 커다란 벽 한쪽에 매달린 구리냄비는 지금도 가끔 손질을 하는지 윤이 반질반질한게 금방이라도 내려서 불에 올리고 싶을 정도다. 화덕도 있고, 벽돌로 만든 개수대도 있고, 나름 과학적인 정수 시스템도 있다. 큰 거북이 같은 무쇠난로위에 얼마나 많은 냄비가 올려져서 바글바글 끓으며 냄새를 풍겼을까... 갓 잡아온 사슴, 토끼등을 푸줏간 실에서 다듬어 오고... 그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찜을 할지 구이를 할지 고민을 했겠지... 강 위를 미끄러져 온 배 위에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도르래에 매달린 통에 넣어 위로 올려주고... 한쪽 개수대에선 차가운 물을 받아 씻곤 했겠지. 요리를 하기 시작하니... 점점 냄비가 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