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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c Nomad
BanyanTree Hotel, Bangkok 태국 어디에서도 이렇게 높은 곳에서 잠을 청해 본 적이 없다. 해변가의 매트리스 푹 꺼진 방갈로, 방콕 근교 사진만 멋드러지게 올라와있던 4면이 타일이었던 작은 3층 방, 침대 두개만 달랑 있던 카오산 로드의 2층 게스트하우스, 푸켓 호텔의 보송보송했던 시트, 사무이의 꽃 잎 떨어져 있던 일층 방 - 좋은 방도 나쁜 방도 있었지만 언제나 최고의 순간이었다. 딸과 함께 처음 온 태국. 방콕을 이렇게 위에서 바라보다니 내가 알던 그 곳이 아닌것 같아 더 이국적으로 다가왔다. 서늘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내게 찰싹 붙어 세근세근 잠을 자는 아이의 살냄새를 맡으며 즐기던 오후 한 낮. 내 여행에서 이 시간은 늘, 어딘가 분주히 돌아다니느라 바빴는데, 이제 매일 오후..
팜스프링스에 도착하자 마자 와이파이가 되는 곳을 찾다가 만난 미술관. 산(이라고 하기엔 좀 낮지만) 아래 오도카니 자리한 미술관은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거인마냥 자리해있었다. 일단은 카페에 들어가 안내책자와 인터넷을 뒤지며 팜스프링스 시내에 대한 정보를 재빠르게 머릿속에 집어넣고 나오면서 전시중인 프로그램을 보니, 하이힐에 관한 전시가 있어 눈여겨 보았다가 다음날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들렀다. 하이힐을 신고싶지만, 선척적 어려움 ( 발볼에 살이 없어 구두류를 신으면 모든 체중을 엄지발가락이 받아 늘 발톱이 깨지고 유난히 발이 아팠는데, 그게 볼살이 없어서 더 심하다는 걸 얼마전에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발볼로 일단 중심?을 잡아주니 발꼬락에 힘을 주고 걷지 않더구만. 헐..
1997년. 남태평양 작은 섬에서 약 10개월을 살았다. 여차저차 복잡한 사정으로 야밤도주를 해서 서울에 올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섬을 떠나면서 제일 아쉬웠던 건... 섬 중간 산에 오르는 중턱에 있던 아메리칸 다이너 식당에서 커피 한잔 못해본것이었다. 커피맛이 좋기로 유명하다고 기사도 썼었는데. 정작 마셔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그 후, 그 섬에 갈 일은 없지만 - 가끔 그 카페의 커피맛은 어떨까 상상을 한다. 언젠가 다시 가게 된다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 언덕 중간에 있는 식당으로 먼저 달려가리라.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 마시고, 가보지 못했던 섬안의 섬에 들어가 스노클링도 마음껏 하리라... 그리고 너무 먹고 싶었던 코코넛 크랩도 양껏 먹어치우리라. 너무 어려서 했던 사회 생활. 그래서 오히..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을까.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어느 정도 포기를 해야한다는 말이기도 하니까그 포기의 정도가 어디까지 인가를 놓고 가늠해야 하는 저울질. 여름에 갔던 아유타야는 더웠다. 정말, 더웠다. 더운 나라답게 에어컨 하나는 빵빵하게 틀어대는 버스에서 오들오들 떨다가 내리니 눈까지 멀어버릴 것 같은 강한 햇볕에 한동안 어쩔줄을 몰라했다. 사원엔 한두명의 사람뿐, 동남아에서 흔한 관광객조차 없었다. 주황색 옷을 걸쳐입은 여러 부처님들이 쭉 앉아 명상중이었다. 대놓고 손을 모아 기도할 순 없었지만, 마음속으로 살짝 손을 모아 나의 찬란한 미래를 부탁했었다. 그때 했던, 나의 바람은 ..
5월의 통영은 눈이 부셨다. 약 4년전, 통영 옻칠 장인 인터뷰 때문에 먼 길을 혼자 달려와 촬영을 하고 통영 바다 들를 시간도 없이 완도로 떠났기에 내가 기억하는 통영에는 장인과 같이 먹은 생선이 통으로 들어있던 얼큰한 국이 나온 백반만 있다. 오랫만에 친구 덕분에 좋은 리조트에서 통영의 바다와 섬들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비진도가 보이고 통통배가 보였다. 하늘은 파랳고 살갖은 따가웠다. 해리는 긴 자동차 운행 내내 찌그러져 있었던 다리를 펴고 신이 나 뛰어다녔고 가끔 힘이 든다고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눈에는 원망의 빛이 가득했다. 그래도 넌 개니까 가야해. 내가 널 업고 갈 순 없잖냐. 엉덩이를 툭 쳐주니 힘들게 발걸음을 뗀다. 긴 연휴는 시작이 됐고 우리의 연휴 날씨는 제대로 반짝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