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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c Nomad
여행의 마지막 날... 캘거리로 돌아와 잠깐의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지만, 다들 빠듯한 일정은 싫어했기에, 차를 타고 돌다가 공원 근처에 차를 세우고 캘거리 시내에 자리한 프린스 아일랜드 공원을 둘러보러 들어갔다. 바람은 시원했고, 햇살은 눈부시고, 폭이 좁은 강위에 노니는 오리는 한가해 보였다. 빼곡히 들어찬 잎사귀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기분좋은 소리를 냈다. 이때만 해도, 한창 가을이 무르익어 가던 시기... 설렁 설렁 공원을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카페. 뭐 점심 대충 드시죠 하는 결론에 다들 우르르 몰려가 앉았다. 이미 근처 회사원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즐기고 있었고, 날씨도 좋아 바깥 테라스에 앉아 종업원을 기다렸다. 멀끔한 종업원이 건넨 메뉴판을 건네 들고, 언니와 상의해 ..
언젠가, 함께 작은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자. 작아도 푹신한 잔디 깔린 푸른 마당이 있고, 하얀 펜스 위엔 빨간 장미 덩굴 올라타 있고, 커다란 그늘 만들어 주는 느티나무도 있으면 좋겠지만 집보다 커질게 걱정이야. 자작나무 몇 그루 심어진 앞산이 보였으면 좋겠는데 말야. 아침 저녁으로 산책나가자고 낑낑거리며 뒷문에서 울어대는 작지만 심성 착한 녀석과 새 가족이 되서... 우리, 맛있는 냄새 가득한 부엌에서 하루의 일을 얘기하며 웃을 수 있는- 그런 저녁을 매일 매일 보내자.... 그 때도, 우린 함께일까?
그 때, 가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안 갔으면 좋겠다고 하는 너의 말을 들을 걸 그랬어. 금방 또 만나. 하고 헤어지면 되잖아 라고 웃으며 내가 말헀고, 헤어짐에 아파하는 네 모습 따위 거짓이라고 애써 냉정해지려고만 했지. 잡지는 않았지만, 보내기 싫어하는 너의 조급해진 손길을 뿌리치진 말았어야 했을까. 그 때, 너의 마음은 나를 위한 위로였을까 너를 위한 가면이었을까. 기운차게 지하철 문을 밀고 나가는 그 찰나... 우리가 인사도 없이 헤어진 그 때. 그 지하철 역.
굳이. 이유를 설명하자면. 하늘이 너무 파래서. 이대로 두면 짙은 파랑물이 내게로 왈칵 쏟아져 내릴것만 같아서. 그래서 괜히.손가락으로 하늘을 헤집어 봤어. 물결을 만들면 혹여나 내가 파랗게 변해 너마저도 날 못 알아볼까봐. 얼굴을 가릴려고 그랬어.
노틀담 사원 대각선 방면 횡단보도를 건너 무작정 걷기 시작한게 오전 열한시 즈음. 한참 이골목 저골목 다니다가 두 건물 사이 작은 철제 문이 나 있는 곳을 지나갔다. 그 곳은 따로 가려하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가버릴 만큼 돋보이는 것도 랜드마크가 될 만한 모양새도 아닌 곳이었다. 그저 건물 사이 후미진 뒷골목이거나 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무심코 내 앞의 관광객들을 따라 우연히 발을 들이게 된 이 골목길은 뜻밖의 보석같은 가게가 많은 곳이었다. 비스듬하게 주저앉고 있는 듯한 카페하며, 기념품가게도 하나 있고, 지류와 편지지, 왁스같은 것을 파는 잡화점도 하나 있었다. 골목 중간 즈음 바닥이 울퉁 불퉁 해 자세히 보니, 가운데가 볼록하고 양 옆으로 반들반들하게 닳은 네모난 돌 타일들이 ..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가워졌다. 그날은 늑장을 부리다 점심까지 먹고나서 집을 나섰는데, 퐁피두 센터 가는 길에 시테섬을 지나다가 바라본 모습이다. 금방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더니 건물들만 반짝 반짝 최선을 다해 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마치 선택된 자라도 된 양... 으쓱거리듯이 ... 내 쪽엔 비치지 않는 햇살이 왠지 탈락된 인간같아 서운하다. 낮과 밤이 존재하는 르네 마그리뜨의 그림처럼 명암이 갈린 풍경을 보고 있자니 왠지 지금 내가 여기 서 있는 것조차 비현실적인 일같이 느껴진다. 잠시 다른 공간에 끼어있는 듯한 느낌... 다시 구름이 햇살을 가로막고 세상은 잠시 어둠... 해를 등지고 서서 다리를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