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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c Nomad
아이의 꿈은 그림 그리는 사람이다. 물론 하나의 꿈만 있는건 아니고, 어제는 아이돌이었다가 작년에는 군인이었고, 한달 전에는 여행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색연필을 손에 쥘 수 있게 되면서부터 아이는 종이마다 그림을 그려대기 시작했고, 덩어리가 얼굴의 윤곽을 나타낼 즈음 본인만의 그림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렇게 직직 그은것 같은 그 선들이 모여 나타내는 느낌이 좋았고, 여느 부모와 같이 최고의 그림이라며 아이를 치켜세워주었다. 티비를 볼 때도, 기차 안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식탁 앞에서도 아이는 갑자기 그림을 그리곤 했고, 내 펜을 가져가 색을 칠하기도하고 파스텔을 겹쳐 새로운 색을 만들며 신기해하기도 하고, 그날 먹은 음식, 혹은 재밌었던 만화영화 주인공, 혹은 좋아하는 친구의 얼굴을 ..
노구치는 광화문에서 동대문으로 뻗은 종로 거리의 풍경이 좋았다. 전찻길에는 조선의 옛날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일본의 긴자와 닮은 본정(혼마치 -충무로)과는 전혀 대조적인 조선인의 거리였다. 종로 입구에 있는 화신백화점. 그 건너편 남쪽 구석에 큰 종을 매단 보신각. 13층의 대리석 탑이 있는 파고다 공원. 그리고 거리에 처마를 나란히 한 상점들... 노구치에게는 어릴 때부터 친근한 종로의 풍경이었다. 그는 이 거리에서 조선에 관해 많은 지식을 얻었다. 지식의 종류는 잡다했다. 일례를 들면 점포의 명칭을 들 수 있다. 조선에서는 시치야를 전당포라 부른다는 것, 오방재가라는 건 잡화상이며, '마미도가'라는 이름의, 말의 갈기와 꼬리를 도매하는 기묘한 가게를 알게 된 것도 스케치를 하러 종로에 왔을 떄였다...
몇 해전 더 현대 서울에서 했던 '김서방을 찾아라'의 김선 작가님의 작업 기록물. 작업실 한 쪽에 꽉 찬 작가님의 작업중인 작품도 구경하고, 어떻게 김서방을 찾아라를 시작하시게 됬는지 간단한 인터뷰까지 했던 영상. 더현대 서울 사운즈 포레스트에서 김서방을 찾아라 이벤트에도 응모해서 우리 가족도 한 명씩 작품안에 자리잡았고, 오픈 후 딸아이와 큰 작품 안에서 서로를 찾아주느라 한 참을 눈을 부릅뜨고 구경했다.
Umblical Cord #2023 _ 11 아빠 서재에 쌓여있던 종이들은 내가 학교에서 받아오는 누렇거나 회색인 갱지의 깨름직한 냄새에 비할 바 없이 고급스러웠다. 펄프가 그대로 느껴지는 까슬한 감촉, 그 하얀 종이에 빨리 잘 깍은 매끈한 흑심을 문지르고 싶은 유혹을 참고 참고, 아빠가 모르실 정도로 한두장만 몰래 꺼내와 애지중지하며 아꼈던 종이들이었다. 어떤 종이는 형광등에 비쳐보면 숨겨진 각인처럼 독수리 모양의 문양이 있었고, 부대에서 사용하던 종이인 만큼 스파이 작전에 쓰이는 건가 싶어 혼자 온갖 상상을 하며 그 종이에 친구들과의 비밀 지령도 써 넣고, 조그만 책도 만들어 허접한 동화책도 만들곤 했다. 어마어마한 다독인은 아니지만,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만드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마, 어렸을 때 ..
처음 게돌이를 데려온 건 4년전인가... 교보문고 이벤트 존에서 팔고 있던 스마일크랩을 4마리정도 데려왔다. 한 놈이 갑자기 알을 품었다가 산란을 하고 - 한 놈은 갑자기 친구를 공격해 한쪽 다리를 다 먹어치웠다. 언니네로 분양보내고, 한 마리는 죽고,, 결국 남은 건 공격당해 한 쪽 다리들을 다 잃었던 이 녀석이다. 처음엔 이대로 죽겠구나 했지만 혹시나 하고 따로 놔두었더니, 며칠 한 팔로 열심히 먹기는 해서 혹시 다시 자라지 않을까 했는데 어느날 껍데기만 두고 그대로 탈피를 하더니 네 다리가 다 복원(?)되며 예전의 게돌이 모습으로 돌아왔다. 물 속에 남겨진 껍질만 보고 죽은 줄 알았는데, 코코넛 집 안에 늠름해져서 돌아온 게돌이가 땋! 그 후 몇 번의 탈피를 하고 계속 계속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
프랑스의 첫 인상은 온통 비였고, 쟂빛하늘이었다. 출장으로 잠깐 갔던 3박 4일동안 거의 매일 비가 왔고, 온통 회색빛 하늘에 음침하기 그지 없었다. 낭만이라곤 없이 카메라 비 맞을까 품 안에 품고 습기와 물에 젖어 한국무용에나 어울릴 쪽머리를 해서 돌아다녔다. 연예인 3명을 따라다니며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지만 오후에 호텔에서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 잔은 꿀맛이었다. 낭만따위 없는 축축한 출장 후, 또 파리에 올 일이 있을까 했는데 이년 후 언니 시조카의 결혼식 참석차 다시 갔을 때는 내가 알던 파리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렇게나 활기 넘치는 도시였다니!! 여름의 파리는 더웠지만 싱그러웠고, 온통 초록 세상과 연노랑 크림색과 그레이(건물과 지붕)의 세상이었다. 골목 골목, 발 걸음 내딛는 모든 보도블럭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