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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sy ::: 일상

엄마의 텃밭

isygogo 2012. 6. 12. 23:17

작년, 퇴직 하신 후 갑자기 하루의 시간이 길어져 버린 엄마는.. 말 그대로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 아닌 고민을 하셨었다. 

친구분들 만나도 할 얘기만 딱 하고 제일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고, 여기저기 약속을 만들어 나가는 성격도 아니고, 기운차게 등산이고 산보고 운동을 꾸준히 다니는 성격도 아닌지라-- 엄마로서는 갑자기 생겨난 시간적 여유가 오히려 버겁게 다가왔다. 


그러다가 집 옆 버려진 공터를 치우고 흙을 돋아 몇가지 작물을 심으셨는데, 생각만큼 풍년이 들진 않았었다. 

그래도 빌라 안팎으로 매일 화단에 물주는 걸 도맡아 하셨는데, 올 봄 새로 비료도 사다가 토양 질도 바꾸고 한 후부터는 올 해 농사는 풍년이라며 좋아하신다. 

날이 풀리자마자 엄마는 땅을 갈아엎고, 비료를 섞고 사 온 씨앗을 심으셨다. 

시금치, 열무, 고추, 로메인상추, 쑥갓, 방울 토마토를 심으셨는데,  금새 여린 싹이 돋더니 하루가 다르게 파릇 파릇하게 변하며 쑥쑥 커갔다. 

상추도 매일 매일 뜯어먹고, 열무는 벌써 한번 줄기를 뜯어 김치도 담그셨다. 

우연히 씨가 떨어져 나온 더덕을 볕 좋은 곳으로 옮겨심고, 우굴쭈굴 말라비틀어진 감자를 던진곳에서 감자싹이 나 결국, 검은 비닐봉지로 감싸 감자를 키우신다. 

똑같이 먹다 휙 집어던지 단호박씨가 싹을 틔워 화단 한켠에는 호박 줄기가 하늘향해 똬리를 틀며 올라가고 있다. 

처움엔 엄마대신 삽질을 하며 흙 갈아엎는게 귀찮기만 했는데, 매일 쑥쑥 자라나는 야채들을 보니 기분이 좋다. 

덕분에 일찍 들어올 때마다 밭에 나가 오늘은 얼마나 자랐나 구경도 하고, 잡초도 뽑고, 익은 방울 토마토를 따와 저녁 야채쌈에 곁들여 먹는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야채를 먹으며 저절로 식단도 건강해지고, 제일 달라진 건 야채를 핑계로 엄마랑 더 많은 얘기할 시간을 갖게 된 거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녀석들이 얼마나 반짝이며 크고 있는지... 그런 사소한 대화의 시간이... 내게는 지금  너무나 소중하고 눈부시다. 

이번 주말엔 나무에 매달 새집을 하나 사다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