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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Bicycle #3> 앞만 보고 달릴 수 있는 미사동 강둑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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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Bicycle #3> 앞만 보고 달릴 수 있는 미사동 강둑길

isygogo 2012. 5. 2. 14:36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도시 끝 자락의 강둑길

 

 

상일동까지는 꽤 멀었다. 성내동에서 시원한 오징어물회냉면을 먹고 나서 부른 배를 잡고 예전에 가 본 적이 있던 상일동 강둑을 걸어볼 셈으로 상일동역으로 갔더니 이미 잡풀 무성하던 그 곳에 새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고, 주변 공사가 한창이라 강둑 또한 새로 단장하느라 물은 말라있고, 재정비 공사로 흙먼지만 자욱했다.

큰맘 먹고 왔는데 이미 여기까지 도시영역이 넓어졌구나 싶어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모처럼 온 김에 좀 더 내려가 보기로 했다미사리 조정 경기장까지 가볼까 하다가 좀 한적한 곳에서 걸어볼까 해서 조정 경기장 못 미쳐 시작되는 미사동 강둑 길로 갔다. 미사IC 바로 밑나무고아공원옆에서 산책길이 시작된다. 약간 높게 조성된 강둑 길은 그리 넓진 않았지만 바로 옆으로 훤하게 트인 한강 바라보기가 썩 괜찮다. 잘 놓여진 푹신한 산책길, 꽤나 신경 쓴 흔적이 있는 한강고수부지 산책길보다는 다소 거칠고 뭉툭한 느낌이 드는 길이지만, 시골 저수지의 흙 냄새 나는 강둑길이 생각나고 사람이 많지 않아 일단 조용하다. 강둑 한 단 아래로는 따로 자전거길이 나 있었는데 서울에서 강변 따라 내려오는 길과 만난다.

산책길이 시작하는 곳에 있는 나무고아공원은 2000년부터 공사와 철거로 인해 오갈 곳 없어진 버려지는 나무와 성장이 더디고 병든 가로수들을 옮겨와 집중 관리하고 있는 공원이다. 공사 때문에 뽑힌 나무들은 버려지나 했는데 이런 곳에서 다른 보금자리를 찾을 때까지 휴식중이라고 하니 왠지 마음이 놓인다. 큰 나무도 있고, 지지대에 받쳐져 있는 아직은 어린 나무들도 꽤 눈에 띈다.

 

 

앞만 보고 달려나가는 찰나의 순간

 

강둑 길 따라 걷기 시작하는데, 입구에 막아놓은 바리케이트에 적힌 문구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애완동물, 자전거 금지’ – ? 히힝하며 우는 말이라는 건가 싶어 다시 봤지만 역시나 말이었다. 하긴 불룩 솟아 있는 둑길에서 말을 타고 한강변을 달린다면 정말 좋겠지만 여기까지 말을 끌고 올 수 없을 텐데 왜 말 금지라고 적어놓았는지 그 의도가 궁금해졌다.

한참을 배꼽을 잡고 웃다가 슬슬 청평댐쪽으로 가다보니, 아래쪽 자전거길로 싱싱 내달리며 내 앞을 미리 가로질러 가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잠시 고민을 하다 다시 돌아가 차 안에서 자전거를 꺼내왔다. 그리고 이번엔 산책길 아래쪽 자전거길로 들어섰다. 가끔 퇴근 후에 고수부지에서 탈 때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중간에 잠깐 쉬려고 해도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는데 여기는 조금 한갓지게 자전거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입 속으로 자꾸 날아 들어오는 자그마한 날벌레들이 거슬렸지만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 따라 바람 타고 달리니 저절로 아! ! ! 소리에 절로 입이 벌어진다. 처음엔 그저 두 발을 굴리는 게 신이 났고, 다음에는 멋진 경치가 나오면 멈춰서서 사진도 찍을 수 있어 즐거웠고, 마지막엔 아무 생각 없이, 하나 둘 하나 둘- 오로지 두 발을 돌려 달리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어 행복했다. 처음엔 이리저리 고개 돌려 바라보느라 바빴는데, 어느샌가 앞만 보며 바람따라 달리며 두 발끝에 힘을 줬다 뺐다 하는 걸 느끼며 발을 구르고 있었다. 누구는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가끔은 멈춰서서 주변을 보며 쉬었다 가야 한다고 했지만 잡생각이 너무 많았던 나에겐 이렇게 한가지에만 몰두하는 게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따라 잡으려고 애를 쓰다가는 금방 지쳐 길 옆에 나 있는 풀들과 자전거 도로의 동선에 대해 혼자 훈수를 두고, 그러다가 결국엔 목적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달리게 됐다. 마라톤이나 달리기나 혼자 스스로를 이겨내는 경기라고 했던가, 자전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따로 할말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자전거에 올라타 자기 페이스대로 달려나가면 된다. 좀 앞서 나가도, 좀 뒤쳐져 가도 그 과정을 어떻게 통과해 결승점에 도달했는지가 중요한거다. 아니, 꼭 결승점을 정해놓을 필요도 없다. 목적이 없으면 어떤가,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다다르면 그리고 그 곳에 쉬어가기로 했다면 거기가 결승점이 될 테고, 또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한다면 그 곳이 또 다른 시작점과 분기점이 되 버리고 말텐데.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결승점에 다다르는 것이 아니다. 터닝포인트를 제 시간에 지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전거 페달을 쉬지 않고 계속 돌리는 게 중요하다. 자전거는 내가 몸을 움직여야 나를 데려가니까, 얼마나 부지런히 쉬지 않고 꾸준히 페달을 돌려 가는냐가 중요하다.   뻔한 얘기겠지만, 손과 발을 직접 사용해 움직이는 것만큼 사람에게 좋은 운동은 없다.

몸을 움직여 스스로 나아가는 것, 내 의지로 굳건히 앞서 가는 것, 그 뒤에 따르는 달콤한 보상을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주는 로또나 다름없다. 

 

 

너무 한참을 그렇게 달렸을까- 어느 새 미사리 조정경기장을 훌쩍 지나 저 멀리 팔당대교가 보인다. 무아지경으로 달려올 때는 시원한 강바람과 뜨겁게 달아오르는 무릎 근육만 생각했는데,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살짝 한숨이 나온다. 강 건너 아파트는 장벽처럼 우뚝 서있기만 했고, 그 아래 한강은 그대로 멈춘 듯이 조용하다. 잠깐 넋 놓고 다시 돌아가야 할 거리를 가늠하고 있는데 쌩쌩 귀를 스치며 몇 대의 자전거가 금새 나를 추월해 간다. 고수부지와는 달리 이 쪽은 혼자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줄 지어 싸이클처럼 씽씽 앞으로 앞으로 달려나간다. 지나는 그들의 표정을 보니, 자신과의 레이스에 푹 빠져 무아지경 상태다. 결의에 찬 표정으로 훅훅- 숨을 내쉬며 지나간다.

이곳은 세발 자전거를 타기엔 쉽지 않은 곳이다. 터프하다고나 할까. 한강으로 이어지는 많은 자전거길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자전거만을 위한 자전거 길은 만나기 쉽지 않은데, 이 곳 미사동 강둑길에서만은 오로지 자전거와 두 발 동력만 생각하며 탈 수 있는 숨겨진 보석 같은 길이다.

달리다 지치면 강둑 길에 올라 잠시 숨을 고르고 가도 좋겠다. 돌아오는 길, 잠시 쉬려고 앉았다가 옆에 풍성하게 피어있는 들꽃으로 풀 반지를 만들어 손가락에 끼어봤다. 푸른 물이 살짝 스며들긴 했지만 싱싱한 풀냄새에 다시금 기운이 났다. 생각난 김에 다음 달에 결혼하는 후배에게 선물을 보내주기로 하고, 떨어져 있는 꽃 줄기 중에서 제일 잎이 많이 달린 놈으로 하나 골라 꽃 대 밑으로 손톱으로 구멍을 내고 두 개의 꽃을 엇갈리게 집어 넣어 머리에 쓰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한 명은 머리에 꽃을 꼽고, 다른 한 명은 팔찌를 만들어 우리가 바로 커다란 선물이란 문자와 함께 사진을 보냈더니 일분도 안돼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대박!’ 짧고 강한 감사인사였다.

커다란 꽃반지를 끼고 앉아 혼자 만족하며 앉아있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주인과 함께 나타났다. 밑으로 지나다니는 자전거를 보며 왕왕짖어대며 금새라도 줄을 끊고 달려갈 기세다. 1890년대 자전거 붐이 일어날 즈음, 날쌔게 도로를 질주하는 자전거를 향해 짖어대고 달려드는 개들을 쫓으려고 무독성 암모니아를 분사하는 피스톨을 장착한 자전거까지 등장했다고 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갑자기 달려드는 견공은 아무리 미리 조심하려 해도 쉽게 피하기가 어렵다.

한여름 날씨의 어느 봄날에 2시간이 넘도록 자전거를 타고 전력질주하며 땀을 흘렸더니 두 볼은 빨갛게 물들고 허리까지 아파왔지만 기분은 상쾌하고 바람은 여전히 시원했다.

 

Information : 미사동 강둑길 가는 길-지하철 5호선 상일동 역에서 내려 미사리 카페촌 방향으로 약 15-20분 걸어가면 된다. 카페촌을 통과해 산책로로 들어가도 되고 나무고아공원에서 시작해도 좋다.

카페촌을 통과해 마을로 들어서면 서울 근교인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더디게 가는 작은 동네를 만나게 된다. 좁은 골목길, 낮은 담벼락, 움푹 파인 비포장도로 그리고 빛 바랜 간판들과 매직으로 담벼락에 씌어진 주소… 천천히 느리게 걸으며 즐기기에 좋다. 중간 중간 커다란 창고와 아틀리에 건물도 보이고, 버려진 건물 옆으로 잘 가꾸어진 채소밭이 있는 것 마저 정겹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