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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Bicycle #2> 숲에서 강으로 가는 지름길, 서울숲 코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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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Bicycle #2> 숲에서 강으로 가는 지름길, 서울숲 코스

isygogo 2012. 4. 9. 14:29

서울의 푸른 허파 서울숲에서 숨쉬다

 

 

 

휴일이면 어김없이 늦잠을 자야 하지만 모처럼 서울숲으로 소풍을 가기로 한 날이라 일찌감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짐을 챙겼다. 오랜만의 나들이라 그런지 아이처럼 들뜬다. 발걸음도 가벼웠고 간밤에 내리던 비도 그쳐 하늘마저 잘 닦아놓은 유리알 같다. 일찍 서둘러 그런지 가는 길에 차도 별로 없어 여유롭게 자리를 잡고 살짝 그늘진 나무 밑에 가져온 자리를 넓게 폈다.

주황색 자전거를 옆에 세워 놓고 핸들부터 꼼꼼히 닦아 내려갔다. 여기저기 긁히고 칠이 벗겨진 자전거를 구석에 처박아 놓기만 했던 미안함도 있었다.

늘 차를 타고 지나기만 했던 서울숲은 밖에서 보기엔 크기만 하고 평범한 공원일 뿐이었는데 막상 발을 들여놓고 보니 큰 부지에 연못, 산책로, 야외 공연장, 자연 생태장, 물 놀이터, 나비정원과 식물원 등 문화와 자연체험장이 골고루 갖춰져 있어 어느 누구에게도 볼거리가 많은 공원이었다. 돗자리에 벌렁 누워 하늘을 보니 쪽빛 하늘이 금방이라도 땅으로 쏟아져 내릴 듯하다.

잠깐의 게으름을 피운 후 도로 자리를 걷어 새로 닦은 자전거를 타고 꽃사슴을 볼 수 있는 뚝섬 생태숲으로 갔다. 가는 길 따라 늘어선 관목숲에서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고 다리 밑 서늘한 공간에 하나 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날이 더워서 일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몸이 후끈해졌다.

꽃사슴우리 앞에 있는 사료 자판기에서 사료를 한 봉지 뽑아 들고 우리 가까이 가자 이미 냄새를 맡고 몰려든 꽃사슴들이 코를 벌름거리며 철장 사이로 코를 박고 킁킁거린다.

옆에서 계속 사슴 먹이를 주던 꼬마 아이가 사료가 다 떨어지자 보채기 시작해 들고 있던 남은 사료봉지를 건네고 보행전망교로 올라갔다. 아주 조금 올라갔을 뿐인데 발 아래로 서울 숲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한강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가슴 속 깊이 숨을 들이시니 금새 가슴이 파랗게 변해버린다.

 

너와 나, 우리가 함께 즐기는 아름다운 공간

 

 

생태숲을 통과하는 보행전망교는 자전거 통행은 금지돼있어 자전거를 끌고 걸어 가야했다.

숲 한가운데 놓여있는 시냇가에 생태숲에서 살고 있는 사슴들이 몰려나와 목을 축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고요한 산 속,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에 온 기분마저 든다.

집중하고 보다 보니, 물을 넘기는 사슴의 목울대마저 보이는 것 같다.   

다리를 다 건너면 바로 한강고수부지와 만난다. 여기서 방해 받지 않고 자전거를 제대로 타고 싶으면 한강자전거도로로 빠지면 된다. 왼쪽으로는 성수대교가 오른쪽으로는 동호대교가 보이고 응봉산 팔각정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작은 장난감 병정처럼 보인다.

다시 뒤로 돌아 서울숲으로 들어간다. 서울숲 안내도 앞에 서서 어디를 갈까 잠시 동선을 살펴보다가 서울뚝섬문화예술공원으로 머리를 틀었다. 잠깐 내리막길에서는 두 발을 떼고 달렸다. 자전거 배울 때 제일 먼저 배운 못된 습관이랄까, 좀 균형이 잡혔다 싶으면 꼭 두 손을 떼보거나 두 발을 떼고 곡예 운전 흉내를 내게 된다. 양 쪽으로 큰 나무들이 우거져 둥근 터널처럼 생긴 길로 들어서니 네 명의 가족이 모두 자전거를 타고 줄을 맞춰 가고 있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A구역의 숲속길을 지나 호숫가로 들어가니 나무 밑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람, 가족들과 나들이를 즐기는 사람, 연인과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 쿨토시 팔에 차고 열심히 걷기 운동중인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수변가에 잠깐 서서 마침 시작한 분수쇼를 보고 중앙에 자리한 뚝섬가족공원으로 향했다.

너른 잔디 광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공놀이를 하거나 바닥에 핀 들꽃 구경을 하거나 씨름을 하는 등 바쁘다. 유독 많은 외국인들 가족이 눈에 띈다. 10년 전 처음 뉴욕 센트럴 파크에 갔을 때 영화에서나 보던 도심 속 거대한 녹지공간에 입이 떡 벌어졌다. 서울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잔디에 누워 책을 읽고(서울 대부분의 공원에서는 잔디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음악을 들으며 여유롭게 친구들과 얘기를 하는 나름의 로망이 있었던 차 제일 큰 잔디밭으로 들어가 다른 사람들처럼 털썩 주저앉아 책도 보고 낮잠도 자며 보냈던 그 오후 한나절이 뉴욕 여행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그만큼 잔디밭에서 무언가를 하는 일 자체가 어색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잔디문화를 즐기게 됐다. 요즘엔 어딜 가나 쉽게 잔디공원을 볼 수 있으니 시민으로서 반가운 일이긴 하다. 아주 어렸을 적, 동네 공터에 짬뽕 공을 가지고 놀러 가도 잔디나 풀은 고사하고 시멘트나 흙 투성이였는데 쭉쭉 발전해가며 먹고 사는 일보다 즐기며 사는 일에 관심을 더 두게 되면서 시멘트를 부수고 잔디를 심고, 흙 위에 작은 나무와 꽃을 심었다. 즐겁고 반가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잠깐 잔디밭에서 두리번 거리며 놓여진 조각상도 보고 사람들 구경도 하다 나와서 보니, 잔디밭 가장자리에 잔디보호를 위해 언제까지 출입을 금해달라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아뿔싸, 사람들이 당연하게 잔디밭에서 놀고 있길래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었는데 사실 지금은 잔디 보호를 위해 잔디를 밟으면 안 되는 시기였다. 저 사람들은 알고도 모른 체 하고 들어간 걸까, 아니면 나처럼 그냥 누군가 놀고 있으니 나도 상관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들어간 걸까. 살짝 미안해져 얼른 뒤돌아 나왔다. 

 

 

갑자기 와-하는 소리에 이끌려 가보니 바닥에서 솟구치는 물줄기를 맞으며 아이들이 내지르는 함성이었다. 온 몸이 흠뻑 젖은 채로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물줄기와 술래잡기라도 하는 지 아이들은 아랑곳 않고 이 구멍 저 구멍 하나씩 차지하고 또 다른 물기둥이 솟아오르길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어른들도 유난히 더웠던 날씨 탓이었는지 아이들 끌어내는 핑계 김에 슬쩍 슬쩍 몸을 담그고 있었다. 부러웠다. 하얀 물방울 튕기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물줄기 밑에 서있고 싶었다. 하지만 축축해진 채로 집에 갈 수 없었기에 부러운 눈으로 한 번 더 쳐다보고 자리를 옮겼다. 차가운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숲속의 빈터구석에 다시 자리를 제대로 잡고 주저 앉았다. 친구가 가방을 툭 던져 놓더니 어디론가 사라지나 했더니 양 손에 얼음 잔뜩 든 차가운 음료수를 두 개 가지고 온다.

빨개진 뺨에 얼음 컵을 대고 식히며 가방에 넣어 온 책을 꺼내 들었다. 한 명은 자리에 엎드려 책을 펴고, 한 명은 하늘을 덮고 잠을 청한다. 받치고 있던 팔이 슬슬 아파올 무렵, 자는 줄 알았던 친구가 말을 건넨다. ‘지금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 왠 뜬금없는 소리냐며 타박을 하며 웃었지만, 친구가 하는 말이 어떤 걸 뜻하는지 이해하기에 더 이상 묻지 않고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친구가 말을 이었다. ‘어느 정도 일하는 것도 인정을 받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을 수 있는 돈도 있고, 언제나 내 편인 가족들도 있고, 뭐 하나 나무랄게 없는데, 왜 점점 인생은 재미 없어질까? 아침에 일어났는데 오늘도 회사갔다가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저녁 먹고 티비 보다가 자겠지 하는 생각을 하니까 내 자신이 너무 끔찍한거야. 다들 이렇게 살고 있겠지만, 어제는 유난히 일도 하기 싫고, 그렇다고 딱히 뭘 하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이러다가 훌쩍 시간만 가서 정신 차리고 보면 할머니 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무섭더라구. 내가 37살인 것도 믿기지가 않아. 20대는 어디로 간 걸까?’ ‘일하기 싫으면 그냥 놀러 가. 놀다 보면 또 일하고 싶어질걸.’ 했더니 친구가 눈을 흘긴다. ‘너처럼 시간 자유로운 애들은 가능하겠지만 일반 직장인들은 그게 쉬운 줄 아니?’ 몸을 반대로 뒤집어 기지개를 펴더니 또 한 소리 한다. ‘하긴, 하고 싶은 게 없는 게 아니지. 시간이 없는 것도 핑계고 말야. 점점 몸을 움직이지 않게 돼서, 안주하게 돼서, 이제까지의 잘 짜여진 루틴대로 지내는 게 편하니까 점점 굼떠지고 불평만 하게 되는 거 같아. 20대에는 일을 배워야 하니까 모든 신경이 거기에만 집중돼있었는데, 지금은 슬슬 여유도 부릴 수 있게 돼서 더 그런가 봐. 그래도 오늘 이렇게 밖에 나오니까 좋다. 사실 네가 가자고 했을 때 살짝 귀찮았는데, 막상 나오니까 너무 좋은데. 휴가가 따로 왜 필요하겠니. 그래! 취미를 하나 가져야겠어. 너도 살사 배울래? 나 사실 나중에 크루즈여행가서 댄스홀에서 멋지게 탱고나 살사를 한 번 춰보고 싶거든. 멋있게 늙어갔으면 좋겠다. 내일 당장 동호회라도 알아봐야겠다. 그래도 혼자는 못 가겠으니까 너도 같이 가는 거다.’ 끼어들 틈도 없이 혼자 독백하듯 쏟아내더니 말을 마치고는 휙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는 도로 누워버렸다. 발로 쓱 엉덩이를 밀어내고 옆에 누웠다. 멋진 휴양지에 휴가라도 온 기분이다. 오늘은 땅거미가 질 때까지 책도 보고, 졸리면 단잠도 청하고, 말동무와 함께 우스갯소리도 하며 느긋하게 하루를 보내야겠다. 아마 내일은 좀 더 까맣게 타 있겠지.

 

 

Information :  찾아가는 길 – 2호선 뚝섬역 8번 출구로 나와 도보로 약 15, 중앙선 응봉역 2번출구로 나와 도보로 약 30 . 한강변자전거도로에서 진입할 경우- 성산대교 ↔ 용비교 아래 자전거 도로 ↔ 서울숲 지하통로(성수대교하단) ↔ 광진교. 중랑천자전거 도로(광진, 성동, 중랑, 동대문, 강북, 도봉) ↔ 용비교 아래 자전거 도로서울숲의 지하통로. 잔디밭은 매년 4~6, 9~10월중 토,일요일에만 개방한다. 서울숲은 연중무휴24시간 개방. 안내소 옆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으며 2시간정도면 서울숲을 돌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