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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walk #2> 비 오는 날엔 비원 산책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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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walk #2> 비 오는 날엔 비원 산책

isygogo 2012. 4. 2. 12:22

 

먼지 냄새 따라가는 어느 멋진 날의 산책

 

비 오는 날, 출근을 하며 경복궁 앞을 지날 때면 늘 회사가 아닌 다른 목적지로 차의 방향을 돌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아니, 사실은 비가 오는 날에는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아무리 잘 피해 다녀도 운동화 코는 늘 젖어 있고, 바지 뒷단은 축 늘어져있고, 잔머리들은 이유없이 하늘로 치솟고, 뭘 입어도 끈끈한 비 오는 날은 정말이지 집에서만 지내고 싶다. 추적 추적 내리는 비를 끽끽 거리며 연방 닦아내는 와이퍼 소리를 들으며 내가 떠올리는 또 다른 목적지, 나의 파라다이스는 바로 비원이다.

비 오는 날, 고궁나들이라니 왠 뜬금없는 소리냐고 물어도 똑 부러지게 이유를 말하기가 어렵다. 비 오는 날이면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단 하나의 풍경은 내리는 비에 묻혀 조용해진, 먼지 냄새 가득한 누런 흙길과 이제 막 돋아난 연한 잎사귀 가득한 고목나무, 그리고 지금은 주인 없는 정자와 조용히 파문 이는 연못가의 동그라미들.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 냄새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비원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비가 오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이 풍경은 고 피천득 님 때문이다. 어렸을 적 그분의 수필집에서 읽은 비 오는 날이면 비원에 간다는 말이 그때는 어찌나 운치있게 다가왔던지 그 장면이 고스란히 새겨져 지금까지 그 곁을 지날 때면 숨겨진 비원의 뒷마당에 가고 싶어 진다.  

 

 

어느 한가한 평일 낮, 점심을 먹고 푹신한 운동화를 구겨 신고 나와 창덕궁 후원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비가 오는 날은 아니었지만, 여름이 오고 있는 소리를 직접 듣고 눈으로 그 푸른 색의 번짐을 직접 보고 싶어 길을 나섰다. 다른 궁궐과 달리 창덕궁 후원은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며 관람할 수 있다. 몇 무리의 학생들과 외국인 관광객, 그리고 두 쌍의 커플과 함께 후원으로 향했다. 창덕궁을 지나 창경궁의 동명 돌계단 위에 자리한 함양문을 지나 후원에 들어서니 반가운 새소리에 귀가 맑아진다. 자박자박 작은 자갈 밟고 지나는 소리가 이곳의 유일한 소음이다.

한적한 오후를 들썩이는 발자국 소리에 숨어있던 새들이 금새 부산을 떨며 지져귄다.

 

작은 둔턱을 지나니 너른 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사상에 의해 만들어진 네모난 연못 안에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섬이 떠 있는 이곳이 부용지이다.  이 작고 아담한 연못의 동남쪽 모퉁이 돌에는 뛰어오르는 물고기 형상이 새겨져 있고, 연못 한쪽에 부용정이 다소곳하게 자리하고 있다. 연못 한 켠 구석에 앉아 조용한 수심을 내려다 보며 그 옛날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회갑잔치에 다녀온 후 규장각 신하들과 이 부용지에서 낚시를 했다는 정조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대견했을 지 상상을 해본다.

안내원이 이 곳에서 잠깐 쉬어간다고 저 만치 앞에서 얘기를 해, 사람들 모여 있는 중앙 자리를 피해 부용지 앞 정자 근처에 앉았다. 조용히 앉아 볕을 쬐며 눈을 감고 들리는 소리에만 집중을 하니, 물 위를 오가며 날개 짓 하는 날벌레들의 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비 오는 날이면 어떤 느낌일까? 수필 속 풍경처럼 짙은 녹음 속에 갇힌 안개가 갈피를 못 잡고 가만히 내려앉아 있을까, 세찬 빗방울에 뭉텅 뭉텅 생기는 물 웅덩이에 튀기는 빗방울은 정말 왕관모양으로 보일까, 혼자 별생각을 하다가 이어폰을 찾아 귀에 꽂았다. 요즘은 참 살기 좋은 시대임엔 틀림없다. 절대 비가 올 리 없는 이 찌는 더위 속에서 빗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그것도 단 한번의 탭으로.

 

어플로 받아뒀던 자연의 소리중에서 비 내리는 공원소리를 선택하니 금방 내 위로 단비가 쏟아져 내렸다. 조금은 시끄러운 듯하지만 일정한 음률로 후두두둑 쏟아져 내렸다. 빗줄기 사이사이로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도 간헐적으로 들리고, 발자국 소리도 들리는 것이 꽤 신경 써서 만들었구나 싶었다. 그 틈으로 13살의 친구들이 소리쳐 불렀다. 그때는 산성비도, 황사비도 없었던 때로, 갑자기 어두워지며 비가 쏟아진 어느 토요일, 소나기를 만난 우리들은 아침에 예보보고 미리 챙겨 온 우산을 가방 안에 집어 넣고 젖으면 안 되는 교과서들만 비닐봉지에 싸서 가방에 도로 넣고 비장한 각오로 빗속으로 나섰다. 처음엔 비에 젖어 가는 옷과 신발이 거북해 머뭇거렸지만 이내 원래부터 젖어 있었던 듯 체육복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신이 나서 물웅덩이를 일부러 발을 구르며 내달렸다. 친구들과 함께 비를 맞는다는 그 단순한 일이 뭐가 그렇게 좋았던 걸까. 언니 어깨너머로 봤던 영화 ‘singing in the rain’의 진 켈리를 따라하며 전봇대를 휘감아 돌며 노래도 부르며 누군가의 작은 몸짓만으로도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거침이 없었다. 그렇게 한 떼의 의용군처럼 신나게 까불며 하나 둘씩 제 집으로 돌아 가면서 거짓말처럼 자연스럽게 해체돼 결국엔 집이 가장 멀었던 나와 다른 친구 한 명만 남았다. 이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 버려 집에 가면 혼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남몰래 흠모하던 남학생의 의미 없는 몸짓만으로도 다시 우리는 하늘을 날아갈 만큼 방방 떠 버렸다.

꼴사납게 젖어있던 우리를 보며 남학생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는데, 그것마저도 낭만적이라고, 그 우수에 찬 눈을 보았냐며, 우리끼리 해석하곤 좋아라 맞장구를 치면서도 배 안의 어딘가가 계속 간지러웠다. 보통 이런 스토리는 남학생이 쑥스럽게 다가와 우산을 건네주고 사라져야 하는건데, 우리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그 날 감기에 걸려 몇 일을 고생했지만 단지 비 맞고 집으로 돌아온 게 전부였던 그 날은 왜 그런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내가 입고 있던 분홍색 면바지, 하얀색 양말과 당시 유행하던 농구화 캔버스, 그리고 파란색 멜빵 가방과 파스텔 색 똑딱핀. 그렇게 한참을 빗속에서 13살 친구들과 다시 만나 뛰어 노는데, 저 멀리서  자 이제 또 다음 장소로 이동하겠습니다하는 안내원의 마이크 소리가 우리 조무래기 무리를 흩어 놓는다. 왜 유독 그 날이 생각이 나는 걸까. 피해야 할 산성비가 없었기 때문일까, 탈모를 걱정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일까, 젖은 옷을 말릴 생각을 안 해서일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 지 전혀 생각하지 않아서 일까,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사람들 맨 뒤에 따라 붙어 걸음을 옮기며 잠시 상념에 젖었다. 언제 또 거리낌 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물 웅덩이 찾아 밟으며 깔깔 대고 웃을 수 있는 여름이 우리에게 또 올 수 있을까. 비 오는 날 우산일랑 집어치우고 비 맞으러 가자고 하면 친구들은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왕들의 정원을 경하여 만나는 후원의 뒷마당

 

일행을 따라 조금 더 깊숙이 왕의 정원으로 들어가니 조선시대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세운 불로문이 보인다. 창덕궁 연경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통돌을 그대로 깍아 세워진 문으로 ㄷ 자 모양의 문을 오른쪽으로 돌려놓은 형상으로 문의 윗부분에 불로문이라 세워져 있다. 이 문을 통과하는 사람은 무병장수한다고 했다고 하니 아닌 척 하며 슬쩍 몸을 숙여 문을 통과해본다. 아픈 채로 오래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짧고 굵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오래 살기 위한 끝없는 사람의 욕심이겠지만 병 없이 천수를 누리며 사는 것도 큰 혜택이니 조심스레 나 또한 무병장수하기를 바래본다. 당시에 이렇게 칼로 오려낸 듯 반듯하게 돌을 다듬어 만드는 기술이 있었다니 새삼 조상들의 지혜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소리 없는 정적이 못 견뎌 올 즈음 숲 속에서 새들이 울며 지나가고, 한낮의 햇볕에 노곤해 질 즈음 바람이 숲을 흔들어 소리를 만들어 깨운다. 길을 걸으면서 손도 힘차게 앞뒤로 저어보고 점점 짙어지는 녹음을 폐부 깊이 들이쉬기 위해 한껏 가슴도 부풀려본다. 저 담을 하나 넘어 나아가면 바로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과 불필요한 소음 뿐인데 그 속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우울해진다.

 

 

제법 걸었나 싶을 즈음 옥류천에 도착했다. 후원 북쪽 깊은 곳에 자리한 이 개울은 큰 바위를 깍아 둥근 홈을 만들어 물이 바위 둘레를 돌아 떨어지게 만든, 자연에 인공미를 더한 개울이다. 예전엔 임금과 신하들이 이 곳에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고 하니 그 풍류를 즐기는 자세야 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건 아닐까. 

업무에 지친 왕들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덜어내기 위해 찾았던 이 곳은 여전히 현대인들에게 쉬었다 갈 수 있는 비밀스런 정원 역할을 하고 있다. 원형 그대로 남겨져 오늘도 그 풍취를 즐길 수 있듯이 앞으로도 계속 이대로 서울의 비밀 정원으로 남아있었으면 한다. 우거진 숲 속 길을 따라 다시 돈화문으로 나오는 길에 이 아름다운 정원을 산책할 때에도 왕들은 스스로의 두 발로 걷지 않고 가마를 타고 산책을 했다고 하는 얘기를 들으니 조금의 측은지심이 든다. 대지의 기운을, 하늘의 기운을, 나무의 기운을 받아 스스로 몸이 나아가도록 했더라면 왕들도 조금은 오래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비원은 왕들만을 위한 전용 정원이지만, 오늘만큼은 이 정원의 주인은 두 발로 구석 구석 비원을 누비고 다니는 내 자신이다. 오늘 하루, 나는 이 곳의 왕이다.

 

꾀꼬리 우는 오월이 아니라도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우산을 받고 비원에 가겠다. 눈이 오는 아침에도 가겠다. 비원은 정말 나의 비원이 될 것이다.’ – 피천득의 수필집 중 비원.

 

 

Information : 창덕궁 후원관람은 창덕궁 관람과 달리 정해진 시간에 안내원의 안내로만 관람이 가능하며 창덕궁 일반관람권과 후원특별관람권을 함께 끊어야 한다. 안내는 한국어, 영어, 일어로도 가능하며 정해진 시간에 맞춰 관람권을 끊으면 된다. 한국어 후원특별관람은 하루 9회 가능하며, 100분 정도 소요된다. 매주 월요일은 휴궁.

지하철 3호선 종로 3가역 6번출구에서 도보로 10, 3호선 안국역 3번출구에서 도보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