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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walk #1> 맨발로 걸어보는 서오릉

isygogo 2012. 1. 11. 14:37

::: 절대... 새로 블로그를 하기 귀찮아서 써 둔 걸 올리는건 아니다. 진짜! 찍고!! ::: 
 

600년 조선의 역사와 25년 개인의 역사

 


당연히 안 가시겠지 짐작하고 지나가는 길에 물었다. 하지만 엄마는 흔쾌히 운동화를 챙겨 신으시고 집을 나섰다. 장을 보러 갈 때 아니면 따로 엄마와 함께 산책 나서는 일이 없었는데, 오랜만의 둘 만의 외출이었다.

서쪽에 다섯 개의 능이 있다하여 붙여진 서오릉은 초등학교 6년을 내리 소풍으로 다니던 곳이라 이미 너무나 익숙한 곳이긴 하지만 집에서도 가깝고 안에 조성된 산책로도 조용해서 가끔 놀러 가는 곳이다.

아직 해가 중천에 뜨지도 않았는데, 공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65세 이상은 무료라는 문고를 보고 엄마는 깔깔 웃으며 본인은 무료입장이라며 주저 없이 매표소를 통과해 들어갔다.

표를 끊어 부지런히 엄마 뒤를 좆아 들어가 수경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단단하게 다져진 가운데가 약간 봉긋하게 솟아있는 길 위에 서서 신발을 벗어 들었다.

어제 비가 왔더라면 조금은 폭신폭신했을 터인데, 돌처럼 단단하게 다져진 길은 아침부터 달궈져 뜨끈했다. 처음 몇 걸음은 잘게 부서져 있는 돌 때문에 발바닥이 따끔거려 엉거주춤했지만 이내 그것마저 익숙해졌다. 발 밑의 돌들이 이리저리 부딪히며 발 곳곳을 지압해주는 기분 마저 들었다.

수경원에서 익릉으로 가는 길가 옆으로 작은 개울이 있었는데,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인지 물줄기가 거의 말라 있었다. 개울 옆 소나무 사이로 핀 하얀색 찔레꽃 앞에서 엄마는 한참을 서성이셨다. ‘이게 찔레꽃이야. 그냥 지나다닐 땐 몰랐지?’ 하시며 그 밑에 있던 꽃을 보시곤 이건 망초라는 거야라고 하신다. 엄마와 같이 소풍 온 적이 한번도 없었다. 소풍 때마다 다른 엄마들처럼 왜 우리 엄마는 소풍에 같이 가지 않는지 매년 불만으로 입이 1미터씩 나온 채로 소풍을 왔었다. 왜 우리 집은 아무도 소풍에 안 따라오냐고 볼멘 목소리로 묻는 나에게 엄마는 늘 소풍은 애들 놀라고 가는 거지 부모가 껴서 노는 게 아니라고 하시며 하늘 색 일단 찬합만 건네주셨다. 식어버린 김밥과 케찹 푹 찍은 햄버그 고기를 볼이 메이게 먹어대며 엄마가 따라온 친구들의 화려한 3단 찬합을 노려보기만 했었다. 그때는 그게 뭐가 그렇게 서운했는지 기억조차 희미해 괜히 헛웃음마저 난다. 저 앞에 걸어가시는 엄마 앞으로 작은 새가 소리도 없이 날갯짓을 하며 쌩하니 앞서 날아간다.


   익릉은 조선 19대 숙종의 왕비 인경왕후의 능으로 20세 때 천연두를 앓다가 세상을 떠난 비운의 왕비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으로 오르는 참도에 서니 따뜻하게 덥혀진 돌 들이 훨씬 맨발로 걷기엔 좋다. 왕이 다니던 길이었던 신도에 올라 한발 한발 찜질하듯 걸어가며 보니 양 옆으로 붉은 소나무가 빽빽히 심어져 있어 솔 향기가 진하게 풍긴다.

지금은 능에 올라가지 못하게 울타리가 쳐져 있지만, 25년 전만 해도 울타리가 없어 겁 없는 왈가닥 소녀였던 나는 친구들과 능위로 올라가 주변에 있는 석호와 석마 등에 올라타 놀거나 능에서 데굴 데굴 굴러 내려오곤 했었다. 굴러 내려와서 다시 올라가고 또 데구르르 굴러 내려와 또 기어 올라가고 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곧잘 뭉쳐 다니던 3-4명의 친구들하고 서로 누가 먼저 굴러 내려오는지로 순위를 정하고 등에 잔디가 잔뜩 묻어나는 것도 모른 채 몸을 날렸다. 내 강압에 못 이겨 따라 나섰던 작은 체구의 남자 짝은 잔뜩 겁을 먹고 자기는 그냥 미끄럼틀처럼 미끄러져 내려가겠다고 했고, 다 똑같이 안 할거면 넌 깍두기나 하라고 등을 떼 밀었다. 비틀거리다 미끄러져 본의 아니게 밤톨마냥 굴러 내려갔다. 한동안 밑에서 움직이질 않아서 겁을 먹고 내려가봤더니 짓이겨진 잔디 사이로 몸을 일으킨 짝의 입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내려오다가 입술을 깨물었던지 작은 아랫니 사이로 빨간 피가 베어나고 있었다. 크게 다쳤나 싶어 바들바들 떨고 서서 아무 말도 못하는 나를 째려보며 친구가 소리를 질렀다. ‘너 앞으로 금 넘어오면 가만 안 둬분이 안 풀리는지 씩씩거리며 가버렸는데 집에 가서 혼이 났을 그 친구를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제대로 사과를 하고 싶다. 하지만, 아이러브 스쿨로도 싸이월드로도 페이스북으로 그 친구는 찾을 수 없었다. 지금은 제실 뒤부터 바로 펜스가 쳐져 있어 쉽게 능에 다가갈 수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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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걷는 기쁨, 올바른 자세로 얻는 건강

 


홍릉으로 가는 길 중간에 싸리나무 꽃이 붉게 물들어 피어있고, 길 한 가운데 오랜만에 보는 애벌레 한 마리가 느리게 걸어가고 있었다. 예전엔 송충이가 나무 위에서 말 그대로 비 오듯 쏟아져 내려 집에 있던 감나무 밑으로 새까맣게 기어 다니곤 했는데 요즘엔 송충이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던지 가물가물하다. 참 흔한 풍경이었는데, 이제는 참 희귀한 풍경이 되어버린 게 아쉽다.

처음엔 아프기만 하더니 조금 걷다 보니 이제 되려 발이 시원해 좋기만 하다. 얼마 전 티비에서 걷는 자세의 중요성에 대해 알려주던 게 생각 나 다시금 자세를 고쳐 걸었다. 어깨와 가슴을 쭉 펴고, 두 발은 11자 모양으로 유지하며 허리는 꼿꼿하게 펴고 발바닥부터 엄지 발가락까지 자연스럽게 구부러지게 걷는 게 처음엔 이상했지만 계속 자세를 고쳐가며 걸으니 조금씩 몸에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앞에 가던 엄마가 길 옆으로 잔뜩 나있는 이름 모를 풀들을 가르키며 “저 풀들만 나오게 찍어봐! 뒤에는 안 나오고 저 앞에 몽우리 진 것들만 찍으면 이쁘겠네” 라고 한 마디 던지신다. 그제서야 신발을 다시 꿰차 신고 길 옆으로 내려와 엄마가 원하던 대로 사진을 찍고 오니 이미 엄마는 또 저만치 앞으로 나아가고 계셨다.

뿌리에서 또 다른 뿌리가 생겨 한 뿌리에 두 나무가 된 커다란 느티나무 밑에서 잠시 앉아 욱신욱신 해진 발을 쉬었다. 예전엔 못했던 엄마와의 소풍을 마무리하기 위해 김밥은 아니지만 이왕 나온 김에 근처 음식점에 들러 엄마가 좋아하는 칼국수를 먹고 가자고 했지만 엄마는 바로 집에 먹을 거 천지에 밥만 앉히면 바로 먹는데 왜 외식을 하냐며 가는 길에 꽃집에나 들렀다 가자고 하신다. 결국 점심은 집에 가서 먹기로 하고 근처 꽃가게에 들러 벼르던 수국 두 화분을 사 가지고 오랜만에 엄마의 팔짱을 끼고 집으로 돌아왔다.


 

*Information : 서오릉을 비롯해 서울, 경기 일대에 퍼져있는 조선왕릉은 2009년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상에 대한 존경과 숭모를 중요시 여긴 유교적 이념에 따라 조선시대에는 역대 왕과 왕비의 능을 철저히 관리해왔고, 42기 능 모두 훼손되지 않고 제 자리에 잘 보존되있다. 500년이 넘는 한 왕조의 무덤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기에 문화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데, 600년 이상 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제례의식 때문에 더욱 그 빛을 발한다.

조선 왕족의 무덤은 모두 119기며, 각 무덤은 그 무덤의 신분에 따라 그 명칭이 달라진다.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하며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또는 왕의 사친의 무덤을 말하고 그 외 왕족의 무덤은 묘라고 한다. 조선왕조 시대 능은 모두 42개인데 북한에 있는 제릉과 후릉을 제외한 40개의 능이 남한에 남아있다.

 

관람시간 : 하절기(3-10) 6:00-17:30, 동절기(11-2) 6:30-16:30

정기휴일 : 매주 월요일

관람요금 : 대인 1000원 소인 500

교통 : 지하철 3호선 녹번역 4번 출구에서 은평구청 방향에서 좌석 9701, 일반 702A 이용

지하철 6호선 구산역 1번 출구에서 좌석버스 9701 이용

문의 : 서오릉관리소 02-359-0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