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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City # 1> 신안 증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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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City # 1> 신안 증도

isygogo 2012. 1. 10. 19:11

 

:::: 원래는 작년 가을에 나왔어야 했는데, 이런 저런 일로 밀려 올 봄에 출간 예정이었지만.... 가을즈음 오세훈 시장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주제의 책을 먼제 내버리는 바람에....  회의끝에 슬로 트립 부분은 통으로 거둬내기로 결정... 그래서 이 원고와 사진들은... 저작권은 우리가 갖는 조건으로... 우리집 장롱으로 들어와버렸다. 그래도 여름 내 다니며 고생한 게 아까우니.. 블로그에 하나씩 올려볼까나...사진올리는게 힘들어지면 또 잠정 Pause 할지도 :::::

얼마를 달렸던가- 먼 곳으로 떠나는 기쁨에 젖어 깨알 같은 수다를 떨다가 보니 계기판에 노란 불이 들어와있었다. ‘기름이 없어요!’ 라는 한 마디 말에, 차 안은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얼어 붙었다. 음악도 끄고 네비게이션을 바라보니 앞으로 휴게소까지 35Km. 경차의 기름통에 얼마만큼의 기름이 남아있을 때 경고등이 들어오는지 둘 다 알지 못했다. 그저 휴게소 앞턱까지만이라도 가길 간절히 바라며 경사로에서는 최대한 브레이크도 밟지 않고, 시속 70km를 유지하며 앞만 보고 달릴 뿐이었다. 등에선 진땀이 흘렀고 머리 속은 차가 멈췄을 경우 어떻게 할지 다음 행동작전을 짜느라 쥐가 날 지경이었다. 늦은 시각 외진 고속도로 앞 뒤로 차 한대도 보이지 않고, 깜깜한 장막을 뚫고 가는 우리 차만 슬슬슬 언제 설 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다행히 저 앞에 뿌연 빛을 발하는 휴게소 간판이 보였고 그제서야 말 한마디 없던 차 안에서 짧은 안도의 숨이 터져 나왔다.

도착하자마자가득 넣어주세요!’ 힘주어 말하고 나니 그제야 힘주고 있던 허리가 조금 느슨해졌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추억으로(추억이라면 추억이고 악몽이라면 악몽인) 시작한 증도 여행의 첫 날은 안도의 한숨과 여차하면 긴 밤이 됐을 뻔한 아찔함에 가슴 쓸며 지나갔다. 늘 휴게소를 떠나기 전 주유상황을 체크하곤 했는데, 오늘따라 먼 곳 가는 사실에 너무 들떴나보다. 진땀 빼고 나서 다시 시작된 여행의 설렘은 한 밤중에 무안에 도착해서도 계속 이어졌다. 도시와 틀리게 10 조금 넘은 시간임에도 인근 가게들은 문을 거의 다 닫은 상태였고, 간신히 찾아 낸 작은 김밥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시원한 맥주 한 잔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와 그제야 두 다리를 뻗고 누웠다.


 

살아있는 갯벌의 숨

 

간밤의 아찔했던 기억 때문인지 이미 꽉 차 있는 주유통을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나서야 길을 나섰다. 증도로 가기 위해 몇 개의 다리를 건너고 몇 개의 마을을 지났는지 모른다. 무안을 빠져나와 삐죽 가지처럼 뻗어있는 반도로 들어서 현경읍을 지나 지도읍을 지나 사옥도를 지나 증도대교를 건너서 증도에 들어왔다. 창 밖으로 보이는 온통 초록의 논과 밭, 부드럽게 굴곡진 산등성, 파란 하늘은 보아도 보아도 지루하지가 않다. 게으른 소 한 마리가 말뚝에 매여 반쯤 눈을 감고 되새김질을 하고 있고,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새파란 벼들의 푸른 색은 반짝 반짝 빛이 날 정도다.

섬 서쪽에 있는 갯벌까지는 멀지 않았다. 물이 빠져 넓은 갯벌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그 위를 가로 지르는 목재 다리가 바로 470m에 달하는 짱뚱어 다리다. 다리를 건너며 갯벌을 내려다보니 수많은 게들과 짱뚱어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게들이 그렇게 빨리 갯벌 안팎을 넘나드는 줄 몰랐다.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싶어 몸을 최대한 뻗어 바라보고 있자니 나름의 질서가 보인다. 크고 작은 짱뚱어들이 펄쩍 펄쩍 뛰며 뻘 위를 종횡무진하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 약 4km에 걸쳐 하얀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야자수 잎으로 만든 파라솔이 세워져 있는 우전 해수욕장이 있다. 뒤로는 해송숲이 병풍 치듯 서 있고, 앞에는 푸른바다가, 그리고 짙은 나무 색의 썬배드까지, 이국적인 풍경으로 눈이 즐겁다. 날이 차갑지만 않으면 당장 바다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아직 바닷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아직 이르지만 신발을 벗어 모래밭 한쪽에 세워두고 썬배드 위에 일단 누워봤다. 물에 젖은 갈색의 야자수 잎 냄새가 진하게 내려왔다. 간헐적으로 철썩이는 파도 소리에 저절로 눈이 감겼다. 바람 속에 묻어오는 모래조차도 낭만적이라 느껴졌다. 파도 소리가 저절로 커졌다 작아지며 배경음악이 되고, 이미 마음은 저 눈부신 시칠리아 작은 섬 해변가에 가 있었다. ‘잠깐 여기 누웠다 가면 안될까?’ 살짝 불쌍한 눈을 뜨고 동의를 구했다. 나무로 된 썬배드가 뼈 마디마디를 눌러댔지만 잘만 뒤척이면 베기는 곳 없이 누울 수 있었다. 이리 저리 뒤척이다가 딱 맞는 자세를 찾아내 그대로 온 몸의 힘을 빼고 눈을 감았다. 여러 곳에서 느리게 살자고 여기저기서 많이도 외쳐댄다. 점점 건강에 대한 화두가 이슈가 되고, 빨리 빨리 살자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고삐를 좀 늦추고 느리게 느리게 살자고 한다.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하나, 세상은 이미 빨리 돌아가는 데 혼자만 느리게 살다가 뒤쳐지는 게 아닐까 조바심도 난다. 이런 안 맞는 구조 속에서 스스로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거야 말로 슬로라이프가 아닐까 생각을 한다. 나에게 맞는 생활 패턴대로 살아가는 것,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내 멋대로 살아가는 것, 그런 마음가짐을 굳건히 다지는 것, 빠르게 지나야 할 길은 빠르게, 늦어도 된다면 조금 늦게 걸어가며 스스로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 아닐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남들의 생활방식을 따라 할 필요도, 이제까지의 생활패턴을 바꿀 필요도 없고, 단지, 그 틈 사이사이 미쳐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일들에 관심을 갖고, 뻔한 길도 조금 돌아가고, 결정적 순간에 잠깐 크게 숨 한번 들이쉬고 다시 생각해보는 여러 가지 새로운 습관에 자신을 익숙하게 만들면 된다. 이 또한 금방 익숙해지길 바라지 말아야겠지. 새로운 습관이 몸에 배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은 누구나 다 필요한 법이니까.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다. 햇살 없는 곳에서 습기를 이불삼아 누워있어서 그런지 금새 코가 맹맹하다.   

갯벌에서 펄떡거리는 짱뚱어를 구경하러 가까이 가다가 부드러운 진흙 속에 발이 묻혔다. 슬리퍼 속으로 밀려 들어오는 갯벌이 발을 간지럽혀 아예 신발을 다 벗어 던지고 맨발로 근처 갯벌을 돌며 구멍 밖으로 나왔다 들어갔다 하며 주변을 살피는 방게 구경도 하고, 발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갯벌 꾹꾹 밟으며 지압하듯 걸어 다녔다. 발목 위까지 푹푹 빠지는 갯벌 사이에서 휘적거리며 다니는 게 마냥 즐겁기만 하다. 발가락 사이로 삐져 나오며 간지르는 갯벌 탓에 온 몸이 간질간질해진다. 갯벌에 다량으로 함유된 게르마늄 때문에 피부노화방지에 좋다고 하는데 아직 가야할 곳이 있기에 얼굴에 바르는 건 잠시 미루기로 했다.




작은 금가루 가득 쌓인 태평 염전

 

향토인이 자연속에서 살면서 고을의 먹거리와 지역 고유 문화를 느끼며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조용한 공동체 운동으로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시티 운동은 바쁘게만 살아오던 현대인들에게 인간의 행복은 물질의 소유뿐 아니라 사는 곳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먹는 즐거움을 향유하고, 정신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누리는 것이란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바쁘게 빠르게 쉽게 모든걸 얻으며 살다가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이제는 먹고 살기에 급급한 것에서 벗어나 예전처럼 조금 불편하게 조금 느리게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게 달려가다 이제서야 걸음을 멈추고 주변 환경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빠르게만 살던 삶의 부작용으로 이제는 천천히 가려고 또 많은 시간과 돈을 쏟아 붓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산업혁명 이후 급박하게만 달려온 현대 삶에 염증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한 둘 슬로 라이프로 돌아서고 있으며, 현재 25개국 147개 도시가 국제슬로시티연맹(cittaslow International Network)에 가입되어 있다. 증도는 천연 갯벌과 청정 태평염전으로 2007년 12월 1 아시아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사람 몸에 꼭 필요한 소금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귀중한 먹을 거리였는데, 7세 이상은 1년에 일정량의 소금을 사도록 강요했던 프랑스 정부는 시세보다 10배 이상의 가격으로 팔던 염세 때문에 결국엔 민중들의 저항이 강해져 혁명으로 이어진 프랑스 대혁명도 소금 때문이었고, 부족해진 소금을 구하기 위해 현재 티베트 소금산으로 떠나 부여의 소금문제를 해결한 주몽이 백성들로부터 신망을 얻어 고구려 건국의 발판이 된 계기도 소금이었다. 선사시대에도 소금이 만들어지는 해안가나 암염이 있는 장소가 물류교역의 중심이 되고, 시장 형성의 중요한 요소였다. 소금은 특히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에게는 생리적으로 필요 불가결한 것으로, 체내 삼투압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성분이지만 과잉되면 고혈압의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나트륨 섭취를 잘 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나 좋은 소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천일염에 대한 인식 또한 높아지고 있다.

소금은 소()나 금()처럼 귀한 물건, 또는 작은 금(小金)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자인 염()이라는 단어 또한 소금에 대한 국가의 지배를 뜻한다고 하니, 예로부터 소금이 인간 생활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여의도 면적의 2배에 달하는 태평염전은 단일염전으로는 국내 최고를 자랑한다. 한국 전정의 피란민을 정착시키기 위해 썰물 때 물이 빠지면 건너 다니던 전증도와 후증도 사이의 갯벌에 둑을 쌓아 염전을 만든 게 태평염전의 시초라고 한다. 염전 끝에 섰다고 생각했는데 지평선 너머 하얀색 바다가 끝이 없이 펼쳐져 있다.

아직은 본격적인 염전 작업이 시작되기 전이라 곳곳에서 염전 둑을 보수하거나 갯벌을 다시 다지고 있었다. 태평염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소금 박물관은 1945년 염전 설립 초기 지어진 석조 소금 창고를 개조한 것이다. 안에 들어가면 해수 취입부터 결정과정, 포장, 보관까지의 천일염 제조 공정을 알기 쉽게 만든 디오라마가 있다. 한참을 들여다 보다가 밖으로 나와 맞은편 습지로 가봤다. 산에서 나는 약재라고 생각한 함초가 바다에서 나는 식물이었다니 의외였다. 게다가 빨갛기까지 하다니 이름에서 풍기는 한약재스러운 맛은 하나도 맞지가 않았다. 만들어 놓은 테크 말고는 습지에 내려 갈 수 없어 몸을 최대한 내밀고 함초 구경을 해야했다. 데크에 앉아 앞 뒤로 방향만 바꿔가며 함초구경을 하며 보니 출사 나온 한 떼의 사진작가들이 사방에서 사진기를 받혀놓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최대한 걸리지 않게 몸을 숙여가며 지나다가 제일 끝 쪽 데크 끄트머리에 앉아 짱뚱어가 튀어 오르는걸 구경하고 있는데, 어느 새 다가온 사진가 아저씨가 말도 없이 렌즈를 우리 쪽으로 놓고 사진을 찍는다. 보아하니 딱 우리가 걸리게 찍고 있는데 파인더 보고 확인한 게 아니라 기분 나쁜 티는 못 내고 그냥 한번 째려보고 자리를 떴다. 꼭 파파라치에 당하는 느낌이라 습지에서 나오고 나서도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차라리 그냥 갈대밭 사이에서 포즈라도 취해줄걸 그랬나, 모르는 사람의 카메라에 담겼을 생각을 하니 속상하기만 하다. 그래도 나쁜 뜻으로 찍은 건 아닐 테니 너그러이 이해하기로 했다. 뭐 그럴수도 있지! 쿨하게 넘어가자. 

맞은편 습지공원까지 한 바퀴 둘러보니 어느 새 해가 땅 끝에 걸렸다. 소금의 짠 맛을 뒤로 하고 별을 헤러 가야 할 시간. 도시에서 더 피곤함을 느끼는 이유가 지나치게 밝은 조명 때문이라고 하는데, 전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인류의 취침시간이 평균 1시간 이상 단축됐고 그로 인해 지나친 빛으로 인한 수면 조절 실패가 사람 몸의 균형을 깨뜨려 스트레스의 한 요인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원래의 어두운 밤을 되찾기 위해 증도 사람들은 국제 깜깜한 하늘 협회(International Dark-Sky Association)’ 에 가입하여 어둠 찾기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지나는 곳마다 가로등도 많지가 않다. 지나친 조명 빛으로 이제는 도시에서 별을 보기가 힘들어졌는데 모든 것이 어둠에 묻힌 이 곳에서 오늘 밤에는 눈 크게 뜨고 밤하늘의 별 헤며 잠을 청해야겠다. 운이 좋으면 길게 꼬리 물고 떨어지는 길 잃은 유성 하나 잡고 소원 하나 빌 수 있겠지.


 

 

 

* 치타슬로(cittaslow=slowcity) : 이탈리아어의 citta(도시)와 영어의 slow(느림)가 결합된 국제적 공식명칭이다.

 

Information

2007 10만명이던 관광객이 3년 새 80만명으로 증가하며 쓰레기와 차량, 인파로 인한 자연환경 훼손이 심각해 입장료 징수를 통해 섬 폐기물 처리비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입장 시 나눠주는 쓰레기 봉투에 본인의 쓰레기를 담아오면 입장료의 50%를 다시 돌려주고 있으니,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깨끗한 증도를 오래도록 찾고 싶다면 가져간 쓰레기는 꼭 다시 가지고 돌아오자.

. 5월부터 7월까지 ‘Slow 소금마을 이야기라는 축제가 염전일대에서 열리는데 소금밭체험과 소금비누 및 족욕소금만들기, 소금 조각, 소금찰흙체험등이 있으니 가족들과 즐기기에 좋은 축제인 듯 하다.

소금 박물관 개장시간 9:00-18:00 , 관람료 성인(20-64) 2,000원 소인 1,000

 061) 275-0829 http://www.saltmuseum.org/

염전 체험은 보통 4월 초부터 10월 말까지 가능하며 미리 체험예약을 해야 가능하다.

소금 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소금 동굴 힐링센터는 패평염전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으로 만든 인공소금 동굴로 동굴 내부에서 미세한 소금 입자를 호흡하며 기관지, 알레르기성 비염 및 천식, 만성피로증후군등의 증상호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서울에도 분점이 있어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성인 10,000원 소인 5,000

소금동굴 서울 남대문 2호점 02-318-4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