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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 - 김동영 (달-12,000 won) 본문

kohmen:::Book (책 소개)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 - 김동영 (달-12,000 won)

isygogo 2009. 1. 30. 21:36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 - 김동영



" 방은 제법 크고 깨끗하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선, 차고 한쪽을 개조해서 만든 공간이라 방이 하루 종일 어두컴컴했다. 물론 커다란 창문이 있긴 하지만 방의 위치상 해가 지는 늦은 오후에만 붉은 햇살이 간간이 방으로 스며들었다가 금세 다시 어두워졌다. 난 항상 그 늦은 햇살을 바라보며 잠깐씩 의자에 기대어 졸곤 했다. 그럴 때면 마치 깊은 바다 속에 홀로 가라앉아 있는 가오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by 생선

몇달 마다, 혹은 몇일 마다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 아. 어디 가고싶다- 그 말을 듣기에 지쳤던지, 어느 날 친구가 대리 만족 하라며 건네준 이 책을 한동안 머리맡에 두고 있다가 며칠이 지나 일찍 들어온 날 - 처음으로 책을 펼쳐들었다. 커다란 안락의자에 몸을 거의 뉘인듯이 비스듬히 걸치고, 싸구려 턴테이블에 비지스의 히트 앨범을 틀어놓고 술술 읽어가다가 책의 중간을 조금 지나, 망치로 얻어 맞은 것처럼 눈에서 불이 번쩍했다.
깊은 바다 속에 홀로 가라앉은 가오리...  나 역시 똑같은 말을 누군가에게 했던 그 날의 기억이, 그 날 창문으로 바라보았던 강가의 풍경이,  휙- 스쳐지나갔다.

일찍 학교에서 돌아와 숙제를 하다가 침대에 벌렁 누워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낮은 창문가에 바짝 붙어있던 침대여서- 누워서도 머리를 돌리면 강위에 놓여있는 철제 다리와, 그 다리밑을 오가는 사람들, 가끔 아주 가끔 지나가는 기차소리도 들리는 나만의 작은 세계안에서 잘 표현되지 않는 외국어로 내 얘기를 중얼중얼 읊조리고 있었다. 넌 늘 밝아보여- 넌 아무 걱적이 없이 살지- 넌 가진게 너무 많아서 정작 가지고 싶은게 뭔지도 모를거야- 그는 그렇게 나에 대해 잘 아는체를 해댔다. 이런저런 실없는 소리를 어색한 한국식 영어와 학교에서 새로 배운 단어들을 조합해 통화를 이어가다가, 내가 그런얘기를 했었다. " 난 어려서 나 자신을 표현해보라는 미술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깜깜한 땅 속 동굴속에서 열심히 굴을 파고있는 두더쥐를 그려갔어. 가끔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나 자신이 바다속 깊은 곳에 눈만 세우고 몸을 감추고 앉아있는 가오리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내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그곳엔 멋진 파란 하늘이 있고, 그 하늘안에 또 다른 물고기들이 매끄럽게 미끄러져 지나가지. 나에겐 눈을 들어 바라본 그 곳이 하늘임에 틀림없지만, 그 하늘을 뚫고 나가면 또 다른 하얀 구름이 가득한 하늘이 또 있잖아? 그 바다속 하늘을 뚫고 올라가야 하는데, 그저 모래에 몸을 숨기고 무기력하게 가라앉고만 있는 가오리가 된 기분이 들 때가 있어...." 

이 얘기를 하면서, 갑자기 가오리가 영어로 뭐였는지 기억도 나질않아, 한손엔 수화기를 붙들고 나름 내 이야기를 열심히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려고 하면서 한손으론 영어사전을 뒤적이고 있었다. Stinray - 그렇게 가오리 얘기를 하게됐고, 그는 나의 얼렁뚱땅 '영어 말하기'를 끈기있게- 귀 기울여가며 이해해주었었다. 그러면서 그가 말했다.
너- 늘 웃고만 있는줄 알았는데 외로움도 많이 타는구나. 내가 다시 되받아쳤다. Uh-huh-  Not always, just sometimes...
금방 젠체를 하며 으쓱거리며 얘길했더니, 그가 다시 말했다. Hey, cocky girl-

집으로 돌아올 즈음... 늘 내 얘기를 제대로 이해해주려고 나름 노력했던 그를 위해 내가 가지고 있던 여러가지 것들을 주워모아- 작은 램프쉐이드를 만들어주었다. 잊고있었던- 하나의 추억이- 가오리때문에 다시 수면위로 올랐다.

가끔. 램프쉐이드를 켜놓을때, 그가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할 뿐이다.
나와 똑같은 감정을- 그리고 똑같은 어류로 느꼈던 사람이 있다는게 또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