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코타 키나발루에서 즐길거리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섬 한쪽을 메워 호텔들을 지어 남국 해변의 하얀 모래사장은 기대할 수 없고, 근처 섬으로의 하루 나들이도 사이판의 마나가하 섬보다 나은게 없는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다른 휴양지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딱 하나를 꼽으라면 이 증기기관차 여행을 추천하겠다. 영국 식민지 시절 유용한 교통수단이었던 증기기관차는 디젤차량이 나오면서 점점 그 빛을 잃고 사라져 갔는데, 수트라 하버 리조트와 사바철도청이 협력해 관광 목적으로 다시 달리게 됬다. 그 당시 운행하던 그 모습그대로, 검은 연기 훅훅 하늘로 날려가며 탄중아루 Tanjung Aru 에서 파파 Papar 까지 때론 힘겹게 때론 힘차게 달려나간다. 매주 월,수, 금 오전 10시에 한번 운행하며 특별한 점심식사가 포함되어있다. 왕복 운임은 1백 95링깃(어린이 1백 10링깃)이며, 묵고있는 호텔을 통해 예약할 수 있다.
역 자체는 다른 오래된 역사처럼 크거나 중후하지 않지만, 잘 정돈되있고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다. 기관실을 제외한 6량의 작은 기차가 플랫폼에 서서 출발준비를 하고있다. 장작때는 열기로 근처만 가도 후끈한 기관실에서는 쉼없이 장작을 태우느라 바쁘고, 식민지 시대의 복장을 한 승무원들이 탑승객들에게 패스포트를 한권씩 나눠주며 때로는 같이 기념사진을 찍어주랴 분주하다.
비닐 봉지에 담긴 시원한 커피 한봉지를 사들고 열차에 오르니, 바깥보다 더 높은 온도의 갇혀있던 공기가 얼굴로 먼저 퍼진다.


언듯보면 장난감 앤틱 증기기관차 같다. 예전엔 이 열차로 사탕수수 꽤나 날랐을텐데... ^^


승객들의 탑승이 끝나고 모든 출발 준비가 완료되면 역장이 나와 저 종을 친다. 종 치는 것을 신호로 열차가 천천히 플렛폼을 미끄러져 나간다.


귀엽다고 할까, 빈티지스럽다고 할까... 옛 영국 식민지 당시의 옷을 입고 있는 승무원들.


천장에 달린 선풍기로는 한톨의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지 않는다. 4명씩 마주보며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사람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으면 승무원이 탑승할때 나누어준 패스포트(물론 진짜 패스포트가 아니라, 이 열차에서만 통용되는 토이 패스포트다)에 출발역 탄중아루의 도장을 찍어준다.


빼곡히 차 있는 나무연료와 기관사 아저씨. 그늘에 가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는데, 활활 타오르는 불 앞에서 얼마나 더우실까...


시간을 거슬러, 칙칙폭폭 타고- 옛 보르네오를 만나러 떠나 봅시다!


떠나기전 들고 탔던 봉지 커피. 저 커피가 얼마나 맛있는지 먹어본 사람만이 알거다. 얼음까지 채워 빵빵해진 달달했던 봉지 아이스 커피.


증기기차의 출발역. 탄중아루. 제대로 된 현대식 시설 하나 없지만, 그 시절 말레이시아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던 희미해진 역사와 작은 객실안에서의 낭만적인 점심식사를 즐길 수 있는 추억이 있다.


환한 웃음으로 여행 내내 각 역에 멈출때마다 옛날 얘기도 해주고, 그 지역의 역사도 얘기해주고- 사람들 시중도 들고, 점심 배급도 하고, 중간중간 패스포트에 도장도 찍어주던 승무원 아저씨.


기차를 타고 가면서 만났던 아이들. 어찌나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고, 자기들끼리 놀다가 열차를 따라오며 헬로 헬로 인사를 한다.


가슴팍에 써있는 비 더 레즈. 깜짝 놀랐다. -,.-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사람 사는 구경도 할 수 있고, 키나발루의 생태지역도 볼 수 있고, 들판에 방목되고 있는 소떼도 볼 수 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제일 많이 본 집은 양철로 이은 지붕과 벽으로 이루어진 집. 그나마 벽돌이나 시멘트로 벽 뼈대가 잡혀 있는 집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집들은 벽마저도 부식된 양철로 만들어져 있었다. 전세계 아이들의 공통점... 기차가 지나가면 손을 흔든다는 것.



기차는 탄중아루를 시작으로 푸타탄, 키나룻, 카왕을 지나 파파에 이른다. 파파에 내리면 작은 시골동네의 시장구경을 할 수 있다.





다른건 몰라도, 수도 시설은 정말, 정비해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


탄중아루를 지나 처음 내린 곳은 푸타탄 역이었다. 작은 시골 마을로, 중간에 커다란 불상이 서있는 사원으로 승객들을 안내했다. 그곳엔 관광객들의 자발적인 헌금을 바라는 아이들이 있었고, 관광객들이 지갑을 열기만 기다리던 상인들이 있었다.



절 입구로 나와 관광객들을 맞이했던 아이들. 커다란 탈 쓰고 더운 날 탈춤추느라 너네도 고생이다...


너무 어린 아이들이 관광객들 흥을 돋워주기 위해 나와있는게 조금 의아했지만, 저 작은 체구에서 엄청 박력있는 북소리를 끄집어 낸다. 둥둥. 두둥.



향을 피우고 싶은 분은, 절 안에 있는 상인들에게서 향을 사서 피우시면 됩니다. 간단하죠.





슬슬,,, 비슷한 풍경에 지겨워지던 참에 배급된 도시락. 기차여행에 포함된 점심식사는 식민지 시절 쓰이던 티핀 Tiffin Style 도시락통에 담겨져 나온다. 화려하진 않지만 패스포트부터, 도시락 찬합까지, 소박함이 물씬 나는 기차여행이다.
엄지를 번쩍 들어올릴 만한 맛은 아니지만, 나시고렝과 꼬치, 샐러드, 과일등이 정갈하게 차려져 나온다.


중간에 내가 시켰던 아이스커피. 진하고 달다. 그리고 시원하고 맛있다.


에어콘 시설이 없어, 창문을 열고 달리는 기차안에서- 제일 고역이었던 건.. 더운 날 메탄가스 푹푹 뿜어대던 물소떼들을 지날때. ^^


왜 기차가 지나갈때 꼭 사람들은 손을 흔드는 것일까, 그리고 왜 또 기차에 탄 사람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싶어하는 것일까.
나 역시 열심히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었다.



기차의 종착지겸 반환점이 되는 파파역. 파파강을 건너 역에 내리면 시장구경을 할 수 있는 개인 시간이 주어진다. 우리나라 시골의 5일장 정도의 느낌이다.


더운 날씨 때문인지, 한낮의 마을 광장은 한산해보였다. 가끔 한 무리의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까르르 웃으며 지나갈 뿐, 그들마저 근처 패스트 푸드 점으로 쏙 들어가 버리면 또 정적- 그런 작은 동네였다.


싼값에 쪼리 하나 사볼까 했지만, 도저히 품질이 의심스러워서 포기. -,.-



시장의 재미는 역시나 먹는게 아닐까. 시장 한곳에 자리잡은 푸드코트(나름 푸드코트)에서 튀긴 몽키 바나나, 닭다리 구이, 도넛등을 구경하고 제일 만만(?)해 보이던 바나나를 하나 사 먹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돌아오는 기차안에서는 잠이 들어- 더운 날씨와 배부른 배 탓이라고 하고싶다- 사진을 한장도 찍지 못했다. -,.- 일어나보니, 처음에 배웅받으면 떠났던 그 곳- 탄중아루였다. 하지만, 키나발루에 오게 된다면- 꼭 이 증기기관차 타보시길... 바닷가에서 뒹굴며 하던 선텐이 지겨울 즈음, 아름답고 화려한 물고기를 보기 원했지만 물 밑으로 보이는 건 다 죽억는 산호와 시커멓게 가시돋친 성게라 실망했다면- 주저 말고 보르네오 증기 기관차 기차여행을 하시라.  

* 지금은 기차 역과 레일 보수관계로 잠시 운행 중단 상태라고 한다.

www.northborneorailway.com.my




Posted by isy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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