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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c Nomad
파리에 눈이 내렸던 그날. 아침부터 의무감에 카메라를 메고 다니다 단발머리부터 어그 부츠 속까지 다 젖었던 날...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쓸데없는 의무감에 하루종일 싸돌아다니다가 집에 왔더니.. 친구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오늘 하루, 행복했니? 아주 짧은 그녀의 문자였는데, 추운데 있다 들어온 탓에 카메라 렌즈에도 내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눈 때문에.. 행복했어야 했는데,,, 마냥 즐겁게 지내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에 아쉬움 많았던 하루. 그래도, 사진 몇장 건졌으니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는 직업병 멘트따위 하고 싶지는 않았던 그 날. 오늘 하루, 행복하십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세일하는 맥주 네캔. 잊지 않고 봉지에 담아 온 그날... ^^ 자기 전엔 행복했습니다. ^^
파리에 펑펑... 눈이 쏟아지던 날... 퐁데자르 위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모자를 쓰고 내리는 눈을 피해 잔뜩 움츠리고 있었지만... 얼굴만은 오랫만에 펑펑 내리는 눈이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아이처럼 빛나고 있었다. 손은 꽁꽁 얼었지만 파리에서 만나는 눈이 그저 반갑기만 했던 날... 오늘 같은 날... 추웠다면 서울에도 비 대신 눈이 이렇게 내렸을까?
눈이 내린 날.. 아침에는.. 늘 내복바람으로 창문에 서서 사진을 먼저 찍었었다. 그리고 항상 똑같은 생각을 했다. 나는.. 언제나...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라고... 받는 자 없는 소원을 ... 빌곤 했다. 지금 나는.. 행복한 사람일까.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런 일이.. 친구네 집 앞에 세워둔 차 가지러 갔더니, 딱. 사람다닐 길만 녹여놔서 결국, 옆 집 빌라의 삽을 빌려, 아침부터 내 차가 갈 길을 만드느라, 말 그대로 혼자 삽질하고... 결국 하다보니 주변 눈까지 허리아플때까지 치우고 출근... 에헤.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눈이 됐다. 압구정에서 친구를 태우고 집에 올때쯤엔 눈이 점차 쌓이기 시작하더니. 친구네서 일하다 집에 가려고 나오니 저렇게 눈이 펑펑.. 결국, 차는 친구 집앞에 버려두고 구두 벗어두고 운동화 빌려신고 우산 하나를 빌려 가파른 지름길-일명 심장 터지는계단-로 집에 왔다. 두 다리가 후들거릴 즈음, 누군가 나 보다 먼저 이 길을 지나간 단 한사람의 발자욱 때문에 그나마 눈에 덜 빠질 심산으로, 그 발자욱을 똑같이 밟아 올라왔다. 계단을 다 올라왔을때, 심장은 터질것 같이 헐떡거렸고, 귀는 이미 감각이 없었고, 목구멍은 찬 공기 대량 유입으로 따갑다 못해 숨쉬기도 힘들어졌고, 맨발에 신은 조금 작은 운동화로 눈이 들어와 뒤꿈치는 땡땡 얼었다. 평지에 올라서서도 한참을 목을 잡은..
눈은, 밤사이 얼마나 빠르게 내렸는지, 12시가 지나 잠이 들때만 해도 청명한 하늘이었는데, 여섯시간이 지나 눈을 떠보니 이미 내가 아는 모든 것은 눈으로 덮혀 사물들의 모양이 조금씩 틀어져 있었다. 저렇게 눈이 오고 나면, 일주일동안은 꼼짝없이 질척이는 눈길을 해치고 다녀야 했고, 차도 신발도 바지 밑단도 지저분해 졌다. 혼자 따뜻한 커피숍에 들어가 캬라멜 마키아또를 시켜놓고 소파에 앉아 책을 보다 꾸벅꾸벅 졸다가 나오는 하루가 반복됐지만, 어딜 앉아있어도 꼬리뼈가 시려오던 그 서늘하고 날카로운 느낌은 겨울 내내 나를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