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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이여, 안녕 (가지야마 도시유키 ::: 리가서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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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이여, 안녕 (가지야마 도시유키 ::: 리가서재)

isygogo 2024. 4. 25. 18:25

 

노구치는 광화문에서 동대문으로 뻗은 종로 거리의 풍경이 좋았다. 

전찻길에는 조선의 옛날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일본의 긴자와 닮은 본정(혼마치 -충무로)과는 전혀 대조적인 조선인의 거리였다. 

종로 입구에 있는 화신백화점. 그 건너편 남쪽 구석에 큰 종을 매단 보신각. 13층의 대리석 탑이 있는 파고다 공원. 그리고 거리에 처마를 나란히 한 상점들... 

노구치에게는 어릴 때부터 친근한 종로의 풍경이었다. 그는 이 거리에서 조선에 관해 많은 지식을 얻었다. 지식의 종류는 잡다했다. 일례를 들면 점포의 명칭을 들 수 있다. 조선에서는 시치야를 전당포라 부른다는 것, 오방재가라는 건 잡화상이며, '마미도가'라는 이름의, 말의 갈기와 꼬리를 도매하는 기묘한 가게를 알게 된 것도 스케치를 하러 종로에 왔을 떄였다. 

온돌방 바닥에 붙이는 노란 장판을 파는 지물포, 말린 명태, 말린 대구등을 쌇아놓고 파는 어물전, 문방구를 파는 필방, 조선 고유의 곤돌라 같은 나막신, 고무신을 진열한 신발가게. 종로에 오면 의욕을 자극하는 신기한 풍경이 즐비했다. 노구치가 특히 좋아했던 것은 도로를 왕래하는 행상인들의 모습이었다. 

커다란 가위를 짤깍 짤깍 울리며 돈이 없어도 고철을 받아주는 엿장수. 손님의 물건을 등에 지고 운반하는 지게꾼. 거리를 다니며 석유통 가득한 물을 3전에 파는 물장수. 갓이라는 독특한 모양의 모자를 쓰고 두루마기를 걸치고 긴 담뱃대를 입에 물고 느긋하게 손님을 기다리는 약초 장수. 여름에는 참외,겨울에는 군밤을 쉰 목으로 외치며 파는 과일 행상... 

헤아리자면 그야말로 끝이 없었다. 노구치 료키치는 종로 거리의 풍물을 통해 조선인의 생활을 알고, 해마다 사라져 가는 조선의 풍속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