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책소개 (12)
Antic Nomad
" 노인은 백발이었고 실크 넥타이를 매고 있었지만, 신발이 없었다." 처음 카버의 소설을 접한건, 종로도서관에서 였는데, 제목때문에 집어든 책이 '제발 조용히 좀 해요'였다. 시달릴만큼 시달린 사람들이 욕다음으로 내뱉을 수 있는 말...아. 쫌!!!! - 뭐, 좀 완곡하게 표현된 제목같았지만, 단편 소설들이 처음엔 굉장히 낮설고 (아마 요즘 내가 주로 일본 소설을 읽어서 그럴수도 있고), 중간중간 개운함없이 끝나버리는 결말에 당황도 했지만, 읽고나서 굉장히 많이 생각나는 책 중에 하나다. 사실, 대성당에 실린 모든 소설을 다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카버만의 '생각하면서 읽게하는' 소설의 맛이 있다. 언젠가, 또 다시 읽게되면, 그때는 아마 지금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 때..
"Sayonara, Sayonara" - written by Yoshida Shuichi" " ..... 나는, 난 남자니까, 여자에 관한 건 알 수 없다,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지." "..... 미안. 아니, 그렇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 우리 일이라는 게 대체로 범죄자를 쫒는 거잖아. 다함께 우르르 에워싸고, 난폭하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말이야. 그 취재 상대가 남자면 왠지 대강은 알 수 있지. 아 물론, 그렇게 믿었던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마이크를 쥔 내 팔을 그다지 강하게, 깊숙이 들이밀지 않더라도, 왠지 모르게 상대의 생각이랄까, 물론 거짓말을 하는 녁석이 많긴 하지만, 적당히 하는 건 아니지만, 상대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아도, 그럴 듯한 거짓말을 해도, 어딘지 모르게 그 녀석이 무슨 생각을 ..
2006. Koh Samui, Thailand 나는 나의 직업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았고, 그것에 충실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내게 있어 의심조차 없이 어딘가에서 새로운 만족을 찾아낼 수 있을 세상에 대한 하나의 길임에 다름 없었다. 그 만족은 어떤 종류의 것이었을까? 세상을 보고 돈을 벌 수는 있었다. 무언가 실행하거나 계획하거나 하는데 있어 부모에게 사과할 필요는 없었다. 일요일에 맥주를 마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정작 해야 할 일은 아니었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생활의 뜻은 결코 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본래의 뜻은 어딘가 다른, 좀더 깊고 아름답고 신비적인 데에 있었다. 그것은 소녀나 사랑과 관련되어 있다고 나는 느끼고 있었다. 그곳에는 깊은 기쁨과 만족이 ..
작년 샌프란 모마 미술관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일러스트 책. 일러스트레이터인 Kate Williamson이 일년간 일본에 머물며 보고 느낀 새로운 동양 문화, 먹거리등을 원색의 일러스트로 그려낸 책이다. 휴대폰, 마차, 자전거, 빨간 단풍, 고야, 컬러풀한 양말, 교토 요리, 가라오케, 당고, 도시락에 딸려오는 물고기 모양 일회용 간장통, 게이샤, 낫토, 란도셀 등 일본의 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해주는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맛깔나게 그려놓았다. 올 해가니까, 일러스트 엽서 세트도 나와있던데, 저자가 우리나라에 와서 일년동안 살면서 그림을 그려낸다면, 아마도 떡뽁이, 광화문 꽃밭, 남산 타워, 막걸리, 이마트, 청계천 물놀이 뭐 이런걸 고르지 않을까? 저자의 일러스트로 그려내는 서울은 아마 또 다른 느낌일텐데...
" 평범한 위선자를 위해. 무지한 차별주의자를 위해. 속인과 광인을 위해. 죽어도 좋을 만한 사람들, 온갖 죄인을 위해. 그러니까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뭔가 어마어마하게 좋은 일을 남기고 떠나고 싶다. 하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나쁜 짓은 생각이 나도 착한 일은 새빨간 거짓말밖에는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포도주 병은 땅바닥에 구르고, 달이 떴다. 이미 무서울 것도 망설일 이유도 없을 터였다. 그런데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뭔가 없을까. 가능한 일은 없는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인가. 달 모양으로 대롱대롱 매달린 발톱이 그냥 욱신욱신 아팠다. 할 일도 없고 죽지도 못하고 내내 생각만 굴리고 있을 뿐인 채 휘고의 ..
Pittsburgh, 2004 ................ 그날부터 세나가키는 늘 마시키 곁에 있었다. 세나가키는 그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는 자신을 자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마시키에게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알릴 수 없음을 괴로워한다. 마시키는 죄의 연관성이 두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세나가키가 마시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기 떄문에 옆에 있는 거시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비굴하게 생각해버리는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다. 세나가키는 마시키의 그러한 체념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저는.......... 있을 수 없는 일을 상상하려 애쓰는 비겁한 인간이에요. 선생님은 잃어버린 것을 어떠한 형태로든 되찾으려고 하시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무서워서 할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