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kohmen:::Book (책 소개) (54)
Antic Nomad
" 뭔가 굉장히 멀리 온 것 같다. 둘이서 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애절한 기분이 들었다. 애절하다는 건, 울고 싶은 기분이랑 조금 비슷하다. 지금 기분이 퍽 좋아서, 이 기분이 언젠가 끝나버리는 것이 슬픈 건지,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니까 나는 그 기분을 애절하다고 해봤다. " 아침부터 아빠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나와 집에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다행히 잡혀있는 약속이있어 괜히 길거리에서 방황을 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려나. 안그래도 무거운 마음에 돌 하나가 들어 앉아 그대로 화석처럼 굳어 버린 기분이다. 짧은 바지에 조금 헤진 스니커즈, 아무데나 구겨 넣을 수 있는 후드 티 하나... 이대로 애절한 기분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수요일. 마음이 아프다.
얼마 전 파주에 갔다가 서해문집 1층에 있는 북카페에서 세일하는 책들 중에서 건진 책이다. 세노 갓파라는 무대미술가이자 수집광이고, 여행광이기도 한 그가 '호기심'에 모아 둔 각종 물건들과 자기가 여행했던 지역의 수수께끼같은 이야기들을 자신이 직접 그림 삽화와 길지 않은, 하지만 위트 넘치는 이야기로 짧게 짧게 들려주는- 한마디로 보는 재미가 쏠쏠한 만화경같은 책이다. 네덜란드에서 맛본 훈제 장어가 먹고 싶어, 동네 장어집에서 한 마리를 얻어다 집에서 훈제를 했지만, 본인이 한 입먹고는 식구들이 먹으려는 걸 필사적으로 막아야만 했다는 일화도 있고, 파리의 지붕에 꼭 올라가 보고 싶어 호텔 종업원에게 뇌물을 쥐어주고, 지붕에 올라가 보이는 풍경을 질리지도 않고 몇 장이나 스케치를 하기도 했으며, 자신이 머..
올 봄.. 스페인 여행을 꿈꾸며 생일을 맞아 스페인 관련 책을 주루룩 주문하다가 발견한 책. 꽤 두툼한 책, 그러나 거칠거칠한 종이때문에 책넘김은 그저그렇고, 사진도 한 챕터마다 한 장씩만 그것도 이상한 바랜 싸이언 색으로만 나와있는게 아쉬운 책. 하지만 그 내용은 정말 당장이라도 마요르까로 향하는 저가 비행기 이지 젯에 몸을 싣고 가고 싶은 기분에 휩싸이게 한다. 늙으면 나도.. 이런 곳에서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하더라도 살고 싶다는 생각마저 하게 됬다. 물론... 추우면 절대 안되긴하지만. ^^ 퇴근 길, 라디오에서 들리는 뉴키즈 온더 블락의 You got it이 들리냐며 볼륨을 최대한 키운 채 전화해 흥분한 목소리로 20년 전의 나를 불러낸 친구 덕분에, 그리고 찾아 듣기 힘들었던 알리사 밀라노의 음..
사라는 내 인생에 깊이를 가져다 주었다. 서른 다섯 살에 처음으로 동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이성을 만나게 된 나는 사라가 주는 나날의 흥분과 평온, 타인과 공명할 떄 생기는 '삶'의 맛에 애번 신선한 감동을 느꼈다. 한편으로 내 일에 대한 위화감은 해소되지 않은 채 계속 남아 있었고, 날이 갈수록 가슴속에 깔린 안개의 농도는 오히려 더 짙어졌다. ............................................ "지나쳐가는 나날들, 지나쳐가는 사람들." 어느 날 밤, 사라와 함께 침대에 누워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 요리도 사람들 앞을 그저 지나쳐갈 뿐이야. 그 사람들이 내가 만든 요리를 진짜로 먹었다는 실감조차 느낄 수가 없어." "나도 그래요." 뜻밖에 사라가 동조하는 말을 했다. "다양..
" ..... 나는 이미 정해져 있는 두 개의 입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을 나 나름대로 판단하여 나만의 입장을 가지려고 노력해왔다. 진정한 지식인은 기존의 입장으로 환원되지 않는 '분류가 불가능한' 자기만의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지식인은 현실 세력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 사고를 하기 때문에 어느 진영에 분명히 속한 사람들이 힘을 쓰는 현실 세계에서 대우받기가 힘들다. 그래도 나는 분류가 불가능한 독자적 지식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 "" 프로방스라는... 발음의 떨림이 미스트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책이라 냉큼 집어왔는데, 왠걸.. 생각보다 쉽게 읽히지 않는다. 아마도 쉽게 슥슥 읽어내려가는 단순한 기행기가 아닌, 작가의 농밀한 지식과 사상, 그리고..
" 불안한 사랑 속에서 청춘을 보내고 나자 나는 더 이상 변해버리거나 빛이 바래고 마는 불완전한 감정에 마음을 내어주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집을 지었다가 허물기를 반복하는 사랑과 이별 대신 허물 일 없는 아늑하고 평화로운 집 한 채를 마음속에 지어주자고 다짐했다. 사랑하고 싶은 것들을 정해놓고 상처를 주지 않는 것들에게만 마음을 주었고 그 시간들은 나의 상처를 보듬어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청춘의 어둠과는 다른 더 깊고 까마득한 어둠이 있는 곳에 갇혔다. 사랑도, 사람도 없는 긴 터널 속에. 나는 그 어두운 곳을 더듬어 오면서 이따금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사람과 사랑을 떠올렸다. 그리고 터널의 끝을 빠져 나왔다고 생각할 즈음,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어깨에 기대는..